강제윤 시인의 새로 쓰는 '섬 택리지'

<17> 전설이 숨쉬는 여수 개도

봉화산·천제봉 품은 '남도의 보물'
섬 주위 도는 '개도사람길'은 걷기 좋아

개도막걸리 한 잔 걸치고
자연 벗 삼으면 천국이 따로 없어

구름이 산중턱에 걸린 신비로운 모습의 개도

티베트에만 하늘호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백두산, 한라산 정상에만 하늘호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여수의 작은 섬 개도에도 하늘 호수가 있다! 개도 둘레길 봉화산 중턱에 서면 하늘호수가 보인다. 하지만 이 호수는 진짜가 아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만이 위치에 따라 호수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개도 하늘호수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섬의 선물이다.

일제 강점기 납석 광산이 있었던 섬

여수의 개도는 개도막걸리로 유명해졌지만 실상 섬은 전설의 고향일 정도로 이야기의 보고다. 개도는 작은 섬이지만 봉화산(烽火山·335m), 천제봉(天祭峰·328m) 등 섬 중심을 관통하는 산들은 기세가 준엄하다. 등산로도 잘 닦여 있어 섬과 바다를 조망하며 걷기 좋다. 근래는 섬 주위를 도는 ‘개도 사람길’이란 둘레길까지 만들어져 있어 섬은 그야말로 걷기 천국이다. 천제봉은 화개산이라고도 하는데 이 산의 형태가 솥뚜껑을 닮았다 해서 덮을 개(蓋)자 개도(蓋島)라 했다는 설이 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개이도로 등장한다. 현종 4년(1663) 사복시 제조였던 허목이 편찬한 목장도에도 개도가 있다. 나중에 이야기할 개도의 애달픈 마녀목 전설이 이 목장과 관계가 있다.

섬 주위를 도는 개도 사람길에 핀 애기 동백

개도 역시 고려 말 이후 공도정책으로 사람들의 거주가 금지됐는데 임진왜란 당시 이동예라는 사람이 난을 피해 들어와 첫 주민이 됐다고 전해진다. 그 후 경주 정씨, 김해 김씨, 남평 문씨, 전주 이씨, 경주 이씨 등이 뒤따라 입도하면서 마을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개도는 면적 8.76㎢, 해안선 길이 25.5㎞의 땅에 1000여 명이 살아간다. 월항, 신흥, 화산, 모전, 여석, 호령 마을 등 자연 마을이 있다. 개도에서 가장 큰 마을은 화산마을이다. 큰 동네 혹은 대동마을로도 불렸다. 여석마을은 숫돌이 많이 난다 해서 숫돌 여(礪)를 써서 여석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일제 강점기인 1927년부터 도자기나 타일 원료로 사용되는 납석 광산이 개발됐고 1995년까지 채굴이 돼 외국으로 수출됐다.

그물 위에 누워서 잠이 든 고양이

등산로를 따라 봉화산 정상에 오르면 봉수대 터가 있다.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 수 없다. 적의 침략을 알려주던 통신시설인 봉수대를 흔히 봉화대라고도 부르지만 정확한 명칭은 봉수대다. 봉화불만이 신호 수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밤에는 불빛을, 낮에는 연기를 신호수단으로 썼는데 봉(烽)은 밤에 불을 피워 올리는 것이고 수(燧)는 낮에 연기를 피우는 것을 말한다. 봉화불은 장작이나 화약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많이 사용한 재료는 개과의 야생 동물인 승냥이 똥이다. 당시에 흔했던 승냥이 똥에는 인이 섞여 있어 그 불빛이 푸르고 멀리까지 가기 때문에 봉화불의 재료로 사용됐던 것이다. 개도 봉수대는 고흥 팔영산 봉수대에서 신호가 오르면 신호를 받아 금오도로 신호를 보냈다.

개도 천제봉 가는 길에 만난 우공

하늘 신에 제사 지내던 독특한 섬

개도의 풍속 중 가장 특별한 것은 지금은 사라진 천제다. 마을 대동제는 당제가 일반적이고 천제까지 모시는 마을은 드물다. 봉화산 옆의 천제봉이 바로 그 천제를 지내던 곳이다. 하늘신[天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마을공동제의 제의가 천제다. 이 땅의 천신숭배는 고대까지 올라간다. 고왕국의 창건자들이 하늘에서

려온 신적 존재로 관념화되면서 생긴 의례다. 옥황상제나 상제가 다 천제다. 천제단은 하늘에 지내는 제사이기에 지붕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개도의 천제는 음력 3월1일 자시에 지내고, 당산제는 3월2일 오후 5시께 지냈는데 천제단을 상당이라고도 한다. 당제는 하당인 마을의 천제당에서 지냈다. 상당의 신격은 천신이고 하당의 신격은 마을신이지만 개도의 당 신앙이 천신에 가지를 잇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아마도 개도가 국영목장이었던 데서 비롯된 풍습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당집 안에 구리로 만든 말 2마리가 모셔졌었는데 1980년대 중반 도난당하고 말았다. 철마상이 사라진 뒤에는 ‘천룡주신지위(天龍主神之位)’라는 위패를 놓고 용왕신을 모셨다. 천제와 당제를 모시는 제관은 ‘당주’라 했다. 음력 2월에 마을 총회에서 생기복덕을 보아 적당한 사람이면서 부정이 없는 사람으로 결정했다. 당주는 3일 전에 모든 제물을 준비해 ‘기우집’으로 올라가 치성을 드리면서 준비해 천제와 당제를 모셨다. 지금은 천제도 당제도 명맥이 끊겼다. 당제를 꼭 종교적으로만 볼일은 아니다. 고유한 민속이다. 당제가 다시 부활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섬에서는 아직 지게가 유용하게 쓰인다

이야기의 섬답게 개도에도 아기장수 설화가 전해진다. 옛날 김씨 성을 가진 가난한 농부의 부인이 영롱한 둥근 해가 입 안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겨드랑이에 조그마한 날개깃이 있었다. 아이가 돌쯤 됐을 때 부부가 밭에서 일하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 집에 돌아와 보니 마당에 널어놓았던 곡식이 처마 밑으로 옮겨져 있었다. 같은 일이 반복되자 의심스러운 마음에 부부는 흐린 날, 곡식을 마당에 널어놓고 숨어서 지켜봤다. 역시나 비가 내리자 아이가 걸어 나와 곡식과 멍석 등을 옮겨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김씨 부부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떨면서 아이가 하늘에서 내려온 아기장수라 여겼다. 그런데 사실이 알려지면 역적으로 몰려 가족 모두가 몰살될 것이 두려웠다. 결국 부부는 아이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아이를 배에 태워 먼 바다로 나간 뒤 발목에다 큰 돌을 묶어 바다에 던졌다. 하지만 아이는 바다 위로 솟구쳐 나와 오른손으로 뱃전을 붙잡았다는데 깜짝 놀란 아비가 도끼로 아이의 오른 손목을 잘라 버렸다. 아이는 왼손으로 뱃전을 붙잡으면서 “오른손이 없는 장수가 무슨 뜻을 이룰 수 있겠는가?” 소리치며 물속으로 아주 들어가 버렸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바다에선 폭풍우가 일면서 청룡 한 마리가 금오도 함구미 쪽으로 날아갔다. 마을 사람들이 용바위라 부르는 바위 위에는 죽은 아이의 영혼이 가지고 놀았다는 담뱃대, 숟가락, 젓가락을 놓았던 자국이 남아 있었다고 전한다.

지극 정성으로 백마 돌보던 복녀의 전설

섬은 어찌 이토록 모진 전설들이 전해질까. 오랜 세월 섬들은 반역향이었다. 뭍에서 쫓겨나 이상향을 꿈꾸던 이들이 살던 섬, 어찌 반역의 꿈이 없었겠는가. 그 꿈을 알고 밀고해 죽게 한 이들이 대체로 가족이고 피붙이들이었다. 자기 자식도 죽이게 만드는 왕조의 잔혹한 이데올로기. 어찌 처연하지 않으랴. 개도에는 말과 소녀의 우정에 얽힌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이야기도 전해진다. 개도 화산마을에는 400년 고목, 정자나무가 있는데 느티나무다. 이 나무의 이름은 마녀목. 말과 소녀의 애틋한 사연이 깃든 나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많은 섬이 그랬듯이 개도는 국영 말목장이었다. 전설은 이렇다.

옛날 개도 목장의 말들은 자주 원인 모를 질병에 걸려 죽거나 잘 자라지 않았다. 그래서 말을 기르던 사육사들은 개도 천제봉 제단에 철마상과 목마상을 모시고 제를 드렸다. 병마로부터 말을 보호해주고 무탈하게 잘 자라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원했다. 이 말 사육사 중 이돌수에게 무남독녀 외딸 복녀가 있었다. 14살, 어린 복녀는 아버지를 도와 말들을 관리하고 제를 드리는 데도 정성을 다했다. 말들은 병들지 않고 잘 자라났다. 말들 중에 검은 점박이 백마 한 마리가 있었다. 이 말이 유독 복녀를 잘 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점박이 백마가 바위에 부딪혀 앞다리를 다쳤다. 뼈에 금이 갔는지 절룩이며 풀도 먹지 않았다. 복녀 부녀의 근심이 컸다. 이돌수는 차도가 없어 보이자 감목관에게 보고하고 폐마하려 했다. 폐마란 말을 죽인다는 뜻이다. 복녀는 폐마를 반대하며 자신이 치료해 살리겠다고 울며 아비에게 애원했다. 아비는 다리가 생명인 말이 다리를 다쳤으니 나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상관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문책을 당할 것이 염려스러웠지만 딸의 간청을 모질게 뿌리칠 수 없었다. 열흘간 말미를 주기로 했다.

복녀는 왕대나무의 속을 파 부목으로 만들어 백마의 다리를 고정시키고 잠도 자지 않은 채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백마는 3일이 지나자 풀을 먹기 시작하며 눈물을 흘렸다. 복녀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다. 복녀는 백마와 함께 자면서 약이 되는 풀을 먹였다. 1주일째 부목을 풀었고 열흘이 되자 백마의 부상은 씻은 듯이 나았다. 백마는 더욱 건강하고 활기차졌고 복녀는 백마의 목을 안고 울었다. 아비도 마냥 기뻤다. 백마도 기뻐서 울었다. 그 후 백마는 더욱 복녀를 따르며 좋아했고 둘은 정이 깊어졌다.

한 달 후 장군이 탈 말을 고르려 감목관이 섬으로 왔다. 그런데 점박이 백마와 진갈색 말이 뽑혔다. 이돌수와 복녀가 울며 간청해도 감목관은 매정하게 백마를 몰고 가버렸다. 복녀는 식음을 전폐하고 울다 병이 났다. 병은 나날이 깊어져 갔다. 그렇게 다섯 달이 지났다. 복녀는 피골이 상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복녀는 불현듯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겨우 몸을 추스르고 목장의 마구간으로 갔다. 그런데 거기 그토록 그리던 점박이 백마가 안장을 찬 채 상처투성이로 서 있었다. 복녀 부녀는 백마를 끌어안고 울었다. 그런데 아비가 말 먹일 풀을 뜯으러 갔다 돌아와 보니 복녀와 백마 둘 다 죽어 있었다.

소녀와 말의 영혼이 깃든 마녀목

차출돼 갔던 백마는 진중을 탈출한 뒤 여러 달 동안 산 넘고 강과 들을 건너고 다시 바다를 헤엄쳐 개도까지 왔다. 그 사이 상처가 나고 피로가 쌓여 목장에 돌아왔을 때는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백마와 복녀는 기쁨에 겨워 떨어질 줄 모르다가 끝내 부둥켜안고 지쳐 쓰러져 숨을 거두어버렸다. 아비 이돌수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빈터에 백마와 딸을 나란히 장사 지낸 뒤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 후 사람들은 이 느티나무를 마녀목이라 불렀다.

이 땅에 이토록 애절한 말과 관련된 이야기는 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이야기다. 마녀목과 함께 개도의 명물은 개도 주조장에서 생산되는 개도 막걸리다. 개도 막걸리는 섬에서보다 육지에서 더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봄날, 천제봉을 내려와 마녀목 아래에서 마시는 개도 막걸리, 이보다 더한 호사가 또 있을까.

강제윤 시인은

강제윤 시인은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섬 답사 공동체 인문학습원인 섬학교 교장이다.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통영은 맛있다》 《섬을 걷다》 《바다의 노스텔지어, 파시》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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