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층 감성 건드리는 앙코르 뮤지컬
아쉬운 봄날에 어울리는 우아함이 좋아

원종원 <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jwon@sch.ac.kr >

별난 배경으로 유명한 소설이 있다.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쓴 《닥터 지바고》다. 이 작품으로 그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상을 받을 수는 없었다. 격변의 러시아 근대사를 겪어야 했던 소설 속 주인공의 인간적 감동과 회한의 감상을 잘 담아냈지만, 정작 그는 계급주의 혁명으로 들끓던 러시아에서 자아비판 대상인 지식인이었고 노벨상 수상 거부를 종용받는 처지였다. 그의 소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우연히 러시아에서 유출된 서적이 이탈리아에서 재출간된 덕분이다. 사정을 감안하고 이야기를 다시 보면 소설 속 등장인물의 체험이 작가의 삶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2018년 대한민국에서 이 소설은 무대용 콘텐츠로 다시 꾸며져 선보이고 있다. 뮤지컬 ‘닥터 지바고’다.

이야기는 의사이자 시인인 유리 지바고와 아름다운 여인 라라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어린 시절 집안의 몰락으로 경제적으로 곤경에 처한 지바고는 귀족이던 그로메코가에 양자로 입양돼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라고, 결국 친구처럼 지내던 토냐와 결혼한다. 그러나 지바고는 식장에서 의문의 여인 라라가 코마로프스키 변호사를 해치려 총을 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그녀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그로부터 이야기는 변혁기의 러시아를 둘러싸고 격정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 이야기, 라라의 남편이자 빨치산으로 악명 높은 붉은 군대의 리더 파샤, 기회주의적인 악인이지만 라라를 사랑했던 코마로프스키 변호사와의 갈등, 토냐와 가족들의 눈물 나는 사연 등을 절절하게 펼쳐낸다.

영화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한때 담배 이름으로 사용됐던 오마 샤리프가 지바고 역으로 등장해 라라로 분한 줄리 크리스티와 함께 눈물어린 사랑 이야기를 스크린에 화려하게 펼쳐보였다. 서로의 운명이 애틋하게 교차되며 이뤄질 듯 이뤄지지 않는 기구한 사연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한숨짓게 만드는 매력을 잘 담아냈다. 모리스 자르가 만든 영화음악도 대단한 인기여서 뮤지컬 제작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라라의 테마’가 무대에 나오는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뮤지컬에서는 물론 영화음악 대신 새로 작곡된 뮤지컬만의 음악과 노래들이 등장한다.
무대로 다시 꾸며진 뮤지컬이 첫선을 보인 것은 2011년 호주에서였다. 뒤를 이어 국내 무대가 브로드웨이보다 먼저 시도되는 별난 기록도 낳았는데, 국내 제작사인 오디뮤지컬컴퍼니의 신춘수 대표가 글로벌 제작 과정에 적극 참여했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창작과 수입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으려던 프로듀서의 도전이 흥미로운 결과를 낳은 셈이다.

뮤지컬은 영화와 원작 소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야기 전개가 다소 느려 보이는 단점이 있다. 시대적 갈등, 진지한 철학, 이념 논쟁보다 사랑 이야기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그래도 무대의 재미를 놓치지 않고 잘 이어가게 한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특히 올해 앙코르 버전은 초연보다 한층 깊어지고 공감되는 배우들의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영화의 감동을 기억하는 중장년층이라면 조금 새삼스러우면서도 다시 그리운 감상을 떠올릴 만하다. 객석의 관객을 한숨짓게 하고, 발을 동동 구르게도 한다.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남기는 아쉬운 감상 덕택이다. 무엇보다 아쉬운 봄날에 어울리는 우아함이 반갑다. 종연이 얼마 안 남았으니 조금 서두르길 바란다.

jwon@s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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