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우주개발 할 수 있다는 확신 준 佛
IT산업 성공 경험을 높이 평가하는 듯
4차 산업혁명과 맞물린 변화를 활용해

류장수 < 한국우주기술진흥협회장·AP위성 대표 >

1989년 한국항공우주연구소(현 한국항공우주연구원)가 설립되기 전의 일이다. 필자는 우리나라가 우주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기에 앞서 실시한 해외 현황 조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는 미국과 소련(현 러시아)이 우주개발을 주도하다가 냉전 종식과 함께 소련의 와해가 시작되던 우주개발 전환기였다.

조사 결과 재미 과학자들의 의견이 둘로 갈렸다. 우주개발은 미래지향적 산업이니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긍정적인 의견부터 “아니, 우주개발이 무슨 어린애 장난인 줄 아시오. 미국이나 소련 같은 대국만 할 수 있는 것이오”라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이처럼 우주개발을 본격 준비해야 하는지 아니면 포기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준 나라는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1960년대 초 국립우주센터(CNES)를 설립해 유럽 국가 중 우주개발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또다시 독일에 당하지 않으려면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발전해야 한다는 게 샤를 드골 대통령의 국가 전략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우주항공과 함께 원자력, 철도, 정보기술(IT)산업도 육성하고 있었다. 이때 한국의 연구진이 CNES를 방문해 협력을 모색했는데 매우 협조적이었다. CNES 산하 엥테스페스(Intespace)라는 위성 조립업체 연구기술진의 협조로 우주기술 개발 관련 시설과 연구개발 방향을 깊이 있게 조사·분석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미국과 소련에 비해 소국인 프랑스가 세계 우주개발의 선두에 서 있다는 사실이 큰 자신감을 줬다.
프랑스와의 이런 인연으로 재작년 말에 이어 지난달 3일 파리와 툴루즈에서 열린 제2차 한·프랑스 우주포럼에 필자도 참석했다. 프랑스는 한국의 우주개발 과정을 타산업 발전과 함께 경이롭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과의 우주기술 협력이 힘든 경쟁 상대를 키우는 것이 될 수도 있음을 그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미래 우주산업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에 대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협력 파트너가 되자는 한국 측 제안에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반도체, 가전, 자동차, 중화학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우주산업도 곧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설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CNES는 한국 방문단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탈레스 알레니아와 에어버스사(社)의 툴루즈 인공위성 제조 현장 방문을 허락했다. 탈레스 알레니아는 초대형 VHTS(very high throughput satellite·최고용량 위성) 인공위성 제조 현장을 보여줬다. 에어버스는 원웹(OneWeb)사와 계약한 소형 위성 제조 현장을 공개하는 성의를 보였다. 초대형 위성과 소형 위성이라는 양극단으로 가고 있는 미래의 인공위성산업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최근 재사용 발사체의 등장은 프랑스 우주발사체 개발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음이 드러났다. 2020년 첫 발사를 목표로 하는 아리안6호 개발은 계획대로 지속하면서 재사용 우주발사체 개발도 등한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프랑스가 한국과의 협력을 원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한국 우주산업에 대한 공급 기회를 갖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프랑스 우주기술이 한국보다 한 단계 앞서 있기 때문에 한국이 원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우주기술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우주산업이 드론(무인항공기), 자율주행 자동차 등 4차 산업혁명에 수반될 산업과 맞물려 큰 변화를 맞을 것이므로 한국의 IT산업 분야 성공 경험을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

이제 세계 우주산업은 또다시 큰 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다. 미국 러시아는 물론 프랑스 중국 일본 독일 등 우주 선진국에 비해 시작이 늦은 한국은 지금과 같은 산업 전환기에 잘 대처할 필요가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국가 우주개발 정책과 산업 육성 방향을 현명하게 수립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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