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 '규모의 非경제'로 낭패 보기 십상
한국만한 시장 영역서 승부 뒤 확대해야

박래정 < 베이징LG경제연구소 수석대표 >

제조업의 마력은 ‘규모의 경제’에 있다. 많이 찍어낼수록 단위 생산비용이 감소하는, 이 횡재와 같은 법칙은 중국 토종 기업들이 강력한 원가 경쟁력을 보유하게 된 배경을 설명할 때 단골로 등장한다.

중국 시장을 겪어본 한국 기업인 중 “우린 몇십만 개 단위로 구매계약을 체결할 때 중국 경쟁사는 몇천만 개 단위 계약을 서슴지 않아 놀랐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5000만 명 소비자를 염두에 두고 사업을 꾸려온 한국 기업과 수억 명 시장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는 중국 기업은 기본 셈법에 차이가 나고, 사업을 키우는 스타일이 다른 경우가 많다.

‘대륙의 실수’ 신드롬으로 잘 알려진 중국 휴대폰기업 샤오미는 2010년 창업해 불과 4년 만에 중국 내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비장의 운영체제(OS)를 바탕으로 새 폰을 설계할 때부터 전국형 사업에 맞게 생산을 여러 하청업체에 맡기고 온라인 마케팅을 구상했던 것이다. 자체 공장을 짓고, 유통체인에 판로를 맡기는 식이었다면 폭주하는 주문량에 과부하가 걸렸을 것이고 금세 비슷한 사업모델을 들고 나온 후발기업에 시장 일부를 내줘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 제조업의 이런 매력은 한국 기업에는 그림 속의 떡이다. 더 많이 찍어 생산단가는 떨어지더라도 시장 외연을 넓히는 데 드는 판매관리 및 유통비용 등이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모자이크처럼 파편화한 시장을 상대로 외연을 넓힐수록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야 하고 유통 규제, 법무 리스크도 커져 관리비용이 치솟는다. 뒤늦게 중국 사람을 세워 이 난관을 넘어서려고 해도 급여 수준이 이미 한국 동종업계의 2, 3배를 훌쩍 넘어 낭패다.
시장은 잘 몰라도 제품 서비스가 압도적이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애플 아이폰이 좋은 예다. 중국 브랜드와 비슷한 스펙을 가지고 경쟁한다면 시장 점유율을 높여도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헛장사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규모가 커져 나타나는 비(非)경제성이다.

수교 직후 진입했던 중국 시장은 한국의 1.4배였다. 한국 브랜드는 제품력만으로도 전국 단위 경쟁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제 중국은 한국의 8배나 되는 헤비급 시장이다. 토종 제품들이 스펙에서 밀리지도 않고 소비자가 한국 브랜드를 높이 쳐주지도 않는다. 여러모로 전국형 사업은 발상부터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 진출할 때면 가상의 경쟁 브랜드와 여러모로 체격을 따지고, 마케팅이나 판매도 긴 안목에서 점진적으로 확장하는 단계를 밟아간다. 그러나 미국급으로 커진 중국에서는 훨씬 이질적인 지역이 많은데도 ‘관성처럼’ 전국형 사업을 염두에 두고 접근할 때가 많다. 입에는 ‘정말 어려운 시장’이라고 달고 살지만, 시장 관점은 지난 20년 동안 크게 바뀐 게 없다.

적과 자신을 아는 것이 싸움에 나서는 기본 자세라고 했다. 중국 내수 경쟁도 싸움터다. 더욱이 중국 기업들은 경쟁에서 지면 도산이지만,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서 져도 딴 시장에 가면 된다’는 속내다. 적정도 잘 모르고 배수의 진(背水之陣)도 없다면 결과는 뻔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익숙한 한국만한 시장 영역에서 결사적으로 승부를 걸어보고, 단계적으로 이 체험을 발전시켜 가는 것이 헤비급 시장에 대한 경외(敬畏)의 표현이자 생존전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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