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중퇴하고 지구촌 떠돌던 청년
전자상가 곁눈질로 디자인 독학
소형 가전제품 시장서 '금맥' 캤다

일러스트 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죽은 빵도 살려낸다는 ‘더 토스터’, 공기청정기 ‘에어엔진’, 가습기 ‘레인’ 등으로 유명한 일본 가전회사 발뮤다의 데라오 겐 사장(45)은 ‘소형 가전업계의 스티브 잡스’로 불린다. 발뮤다 제품이 중국산 저가 제품보다 가격이 5~10배나 비싼데도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붙은 별명이다. 발뮤다는 삼성전자, 필립스 등 대형 가전회사가 수익성이 낮다고 판단해 내버려 둔 시장에서 연 매출 90억엔(약 900억원)가량을 올리고 있다. 디자인과 기능을 혁신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덕분에 작지만 강한 회사가 됐다.

기타 대신 드라이버를 든 로커

발뮤다 제품의 팬들은 혁신 비결을 창업자 데라오 사장의 ‘자유로운 영혼’에서 찾는다. 데라오 사장은 17세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스페인 이탈리아 모로코 등으로 방랑여행을 떠났다. 1999년 록 밴드 ‘비치 파이터’를 결성해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룹 해체로 가수의 길을 포기하게 된 그는 어느 날 네덜란드 디자인 잡지를 보고 제품 디자인을 해보기로 했다. 아키하바라의 전자 상가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디자인을 독학했다. 도면을 들고 공장에 가서 시제품을 만들어달라고 하기도 하고 직접 제작해보기도 했다. 30세가 되던 2003년 발뮤다디자인(2011년 발뮤다로 회사명 변경)을 설립했다.

데라오 사장은 소비자가 사려고 할 것 같은 물건을 만드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고 싶은 물건을 만들기 때문에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발뮤다 토스터도 이렇게 탄생했다. 데라오 사장은 스페인 여행 시절 먹었던 빵맛을 떠올리며 여러 차례 빵을 구워봤지만 도저히 그 맛이 나지 않았다. 우연히 비 오는 날 구워 먹은 빵에서 그 맛을 느끼고, 빵맛을 좌우하는 건 습도라는 걸 깨달았다. 조리할 때 빵 종류에 따라 소량의 물을 넣는 발뮤다 토스터가 탄생한 배경이다.

시장조사 안하고 제품 기획

데라오 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시장조사란 과거의 구매 이력을 바탕으로 미래 수요를 예측하겠다는 건데, 이건 틀린 생각”이라고 말했다. 시장이 뭘 원하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할 시간에 차라리 없는 시장을 창조하려고 시도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시도가 처음부터 성공한 것은 아니다. 발뮤다는 설립 초기에 PC 액세서리를 만들었다. 첫 제품은 개당 35만원 하는 알루미늄 노트북 거치대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주문이 뚝 끊겼다. 이듬해인 2009년 매출 4500만엔에 순손실 1400만엔을 기록했고 3000만엔의 빚을 지게 됐다.
파산 위기의 발뮤다를 구한 것은 2010년 선보인 선풍기다. 장인(匠人)들이 선풍기를 벽을 향해 두고 사용하던 것을 우연히 기억해 자연 바람처럼 기분 좋은 바람이 나오는 제품을 제작하기로 했다. 중국산 저가 제품이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한 가운데 영국 가전업체 다이슨이 날개 없는 선풍기로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고 더욱 용기를 냈다.

계속된 노력 끝에 바람이 닿는 날개 면적을 넓히고 특수 모터로 소음을 최소화한 선풍기를 내놨다. 40만원 가까운 비싼 가격에도 이 선풍기는 큰 인기를 끌었고 덕분에 발뮤다는 위기를 벗어났다. 발뮤다의 연 매출은 2010년 2억5300만엔으로 훌쩍 뛰었다. 이어 선보인 가습기와 공기청정기가 잇달아 시장에서 주목을 받으면서 회사는 쑥쑥 커갔다. 지난해 이 회사 매출은 90억엔에 달했다.

기본에 집중해 ‘특별함’ 만들어

발뮤다의 가전은 시장에 없던 제품도 아니고 다양한 기능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대신 데라오 사장이 소비자에게 전달하려는 것은 ‘시원함’과 ‘맛’이다. 발뮤다의 토스터가 인기를 얻은 비결은 이 토스터로 구운 빵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을 주기 때문이다. 발뮤다 선풍기 역시 조용하고 시원한 바람으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데라오 사장은 소비자가 제품을 보는 즐거움, 디자인 역시 중요하게 여긴다. 제품을 개발하면서 5명의 디자인 직원이 2000개나 되는 시안을 낸 적도 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세계 3대 디자인상으로 꼽히는 독일 ‘레드닷디자인상’, ‘iF디자인어워드’에서 잇달아 수상하기도 했다.

소비자들이 10만원짜리 샤오미 공기청정기 대신 60만원이 넘는 발뮤다 에어엔진을, 3만~5만원짜리 중국산 가습기나 토스터 대신 70만원에 가까운 발뮤다 레인과 30만원이 넘는 토스터를 선택하는 것은 이 같은 데라오 사장의 철학이 제품에 담긴 덕분이기도 하다.

발뮤다는 최근엔 전기밥솥 ‘고한’과 전자레인지와 오븐을 결합한 ‘더 레인지’를 새로 선보였다. 밥솥이 3인분 크기에 불과하고 보온 기능도 없다. 아직 한국에선 판매하지 않는 제품이다. 그러나 밥맛이 뛰어나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일본까지 건너가 제품을 샀다는 체험기가 국내 개인 블로그에 자주 올라오고 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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