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유니콘과 모험자본의 길 (1) '게임업계 신성' 블루홀

"펀드 청산" 배수의 진 친 VC…블랙홀 될 뻔한 블루홀 살렸다

'유니콘' 넘어 '데카콘'으로
창업 3년차, 초기자금 바닥
6개 VC서 171억원 투입

총대 맨 케이넷투자파트너스
"블루홀 아니면 펀드 반납"

두 번째 위기 M&A로 돌파
배틀그라운드 '글로벌 대박'

기업가치 이미 5兆 이상
텐센트 등 해외서 투자 러브콜

마켓인사이트 4월22일 오후 2시41분

미국의 대표적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인 우버의 기업가치는 720억달러(약 77조원)로 평가된다. 미국 자동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 시가총액(540억달러)을 훌쩍 뛰어넘는다.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의 가치도 310억달러(약 33조원)에 달한다. 두 회사 모두 설립된 지 10년이 갓 지난 신생 기업이지만 유니콘을 넘어 데카콘(기업가치 10조원 이상 기업)으로 성장했다. 실리콘밸리 모험자본의 지원을 먹고 자란 두 회사는 총 1만5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많은 청년이 제2의 우버와 에어비앤비를 꿈꾼다. 이들의 기업가정신에 양분을 공급해 유니콘으로 열매 맺게 하는 건 모험자본이다. 벤처캐피털(VC) 사모펀드(PEF) 등과 손잡고 ‘죽음의 계곡’을 넘어 한국형 유니콘(K유니콘)으로 성장한 벤처기업의 성공 사례를 통해 모험자본의 길을 제시한다.

게임 배틀그라운드 개발사인 블루홀은 창업 3년째인 2009년 생사의 기로에 섰다. 초기 자금이 바닥나 창업 3~5년 사이에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폐업이 속출하는 소위 ‘죽음의 계곡’에 접어들었다. 추가 투자 유치가 시급했지만 선뜻 돈을 넣겠다는 투자자는 없었다. ‘소송 중인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벤처투자업계의 불문율 때문이었다.

블루홀은 당시 리니지 개발사인 엔씨소프트와 ‘영업비밀 유출 건’으로 65억원 규모의 소송을 벌이고 있었다. 불문율을 깬 건 케이넷투자파트너스를 포함한 여섯 개 벤처캐피털(VC)이었다. 이들이 주목한 건 블루홀의 창업 인력. 네오위즈(인터넷업체)와 첫눈(검색엔진업체)을 세운 장병규 블루홀 의장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게임 리니지의 개발 주역인 박용현 실장(현 넷게임즈 대표) 콤비는 게임업계에서 ‘환상의 조합’이란 평가를 받았다. VC들은 이들의 저력을 믿고 171억원을 투입, 블루홀을 죽음의 계곡에서 건져냈다.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를 추진하는 블루홀의 기업가치는 5조원 이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VC들이 보유한 약 24%의 지분가치도 1조원을 훌쩍 넘길 전망이다. 초기 투자금의 60배 수준이다.

2009년 블루홀 투자에 처음 총대를 멘 건 벤처캐피털(VC) 케이넷투자파트너스였다. 케이넷은 당시 500억원 규모의 게임 투자펀드를 운용하고 있었다. 이 회사의 김대영 대표는 “블루홀 창업팀의 비전과 게임 개발 계획을 듣고 반드시 투자해야 할 회사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블루홀 투자 못하면 펀드 반납”

문제는 펀드출자자(LP)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모태펀드를 포함한 출자자들은 예상대로 블루홀 투자에 부정적이었다. 이미 1심에서 승소한 상태였지만 “아직 소송이 진행 중인 곳에 투자하는 건 위험하다”며 반대했다. 한 달간의 설득도 효과가 없자 김 대표는 “블루홀에 투자하지 못하면 게임 펀드를 반납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김 대표의 ‘고집’에 출자자들은 법무법인 세 곳의 법률검토서를 요구했다. 김 대표는 한 달간 법무법인을 돌며 ‘항소심 패소 가능성이 적다’는 의견서를 받아 출자자들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소송 문제가 풀리자 그동안 관심을 가져온 다른 VC도 투자에 나섰다. 케이넷을 비롯해 IMM인베스트먼트, 스톤브릿지캐피탈, 새한창업투자, 알토스, 본엔젤스 등이 블루홀이 발행한 전환상환우선주(RCPS) 171억원어치(주당 1만5000원)를 사들였다. 죽음의 계곡에서 벗어난 블루홀은 2011년 리니지와의 소송 2심에서 승소했다.

다시 찾아온 위기, M&A로 극복
우여곡절 끝에 위기를 넘긴 블루홀은 투자금을 바탕으로 온라인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테라’를 개발했다. 제작비만 400억원이 투입된 대작이었다. 하지만 성과는 기대 이하였다. 중국 최대 게임업체 텐센트를 유통사로 잡지 못해 중국 시장에서 고전했다. 개발자인 박용현 실장마저 2013년 회사를 떠났다.

블루홀은 2014년 1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낸 데 이어 2015년에는 적자 규모가 263억원으로 불어났다. 회사의 위기는 곧 VC의 고비였다. VC에 돈을 댄 출자자들이 블루홀 투자를 ‘실패’로 규정했고, 일부 VC는 펀드 조성에 어려움을 겪었다.

위기를 타개할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회사와 투자사 모두 공멸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경영진과 머리를 맞댄 VC들은 인수합병(M&A)을 제안했다. 장병규 블루홀 의장이 사재 300억원을 투입하고 이 돈으로 유능한 개발자가 있는 중소형 게임회사를 인수하기로 했다. 그렇게 사들인 10여 곳의 게임사 중 하나가 지노게임즈다.

지노게임즈는 김창한 프로듀서(현 펍지 대표)가 이끄는 회사였다. 그는 2014년 우연히 게임 방송을 보다가 인기게임 10위권을 ‘배틀로얄(다수의 이용자 중 한 명만 살아남는 총쏘기 게임)’ 장르가 휩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게임 이용자뿐 아니라 보는 사람도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자는 생각에 ‘배틀그라운드’ 개발에 나섰다.

마지막 기회를 ‘글로벌 대박’으로

당시 블루홀은 개발 자금이 넉넉하지 않았다. 김 프로듀서는 배틀로얄 장르의 창시자로 불리는 영국의 브랜든 그린을 영입하자는 다소 무모해 보이는 제안을 했다. 30여 명에 불과한 개발 인력이 이른 시간 내 성공적인 게임을 만들기 위해선 대어급 개발자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장 의장과 VC들은 고심 끝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린을 영입한 뒤 밤낮없는 산고 끝에 배틀그라운드가 탄생했다. 기존 배틀로얄 게임보다 그래픽과 스토리가 탁월하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해외 이용자들은 배틀그라운드를 ‘펍지(PUBG)’라고 부른다. 그린이 게임 공간에서 사용하는 아이디 ‘플레이어언노운’의 약자(PU)와 배틀그라운드의 약자(BG)를 딴 것. 배틀그라운드는 세계 최대 게임 플랫폼 스팀에서 누적 판매량 2100만 장, 동시 접속자 300만 명을 돌파하며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VC업계 관계자는 “블루홀의 성공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경영진의 뚝심과 개발 인력의 열정, 그리고 VC의 과감한 투자와 긴 인내의 합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유창재/이지훈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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