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회 장애인의 날…여전히 열악한 임금·근무환경

고용주가 근로자 임금 결정
시급 500~1000원 받고 일해
월급 10만+과자값 1만원 받기도

식비·활동비 명목 돈 떼기 일수
고용부 "고용 아니라 재활훈련…
업체가 비용 요구해도 불법 아냐"
열악한 처우에 자립 꿈도 못꿔

국회, 장애인 적정임금 개선 논의

2015년 1월27일 열린 서울시장애인주간에서 단기보호시설연합회 관계자들이 서울시에 차별 없는 동일한 기준으로 임금을 지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경DB

지난해 11월 경남 김해에서 가방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송모씨(57)가 장애인 노동 착취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송씨는 지적장애 3급인 B씨(51)에게 1999년 7월부터 15년 동안 자신의 공장에서 물품 하역, 청소 등 잡일을 시키면서 매달 10만원의 임금과 과자값 1만원만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B씨가 받지 못한 임금이 최소 1억1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B씨의 지능은 유치원생 수준이지만 단순 업무를 처리하는 데 일반인과 큰 차이가 없다. 장애인을 마치 노예처럼 부려 여론의 공분을 샀지만 송씨가 고용노동부의 사전 승인만 받았더라면 법적 처벌을 피할 수도 있었다.

지적장애 2급인 김모씨(25)는 오전 9시부터 7시간 동안 인천의 한 제조사업장에서 박스 접는 일을 하면서 하루 5000원(시급 714원)을 받는다. 4대 보험료에다 매달 장비사용료 1만원, 활동비 2만원을 제하면 한 달 실수령액이 단돈 6만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부당노동행위로 노동청에 신고할 수 없다. 그가 일하는 작업장이 고용부로부터 최저임금 적용 예외 인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장애인 단체 등에서 “최저임금도 주지 않으면서 자립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업무능력 70%↓면 최저임금 안 줘도 돼

장애인 고용을 원하는 사업주는 먼저 장애인고용공단이 시행하는 업무능력 평가에서 해당 근로자가 비장애인 근로자 업무능력의 70%에 미치지 못한다는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이후 고용부 승인을 받으면 해당 근로자 임금을 임의로 결정할 수 있다. 현행 최저임금법 제7조는 ‘정신장애나 신체장애가 있는 자로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를 최저임금 예외 적용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이 같은 인가 사업장은 작년 기준 전국 709개로 매년 40~100개씩 늘고 있다. 이들 사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 근로자도 2013년 4495명에서 2014년 5625명, 2015년 7006명, 2016년 7935명, 2017년 8632명 등으로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고용부 관계자는 “인가 사업장은 주로 복사용지, 행정봉투, 사무용품 등 물품을 생산하거나 청소 등 서비스 용역을 하는 곳”이라며 “2008년부터 정부가 공공기관별로 총구매액의 1% 이상을 중증장애인 생산품으로 우선 구매하도록 한 뒤 사업장과 고용 장애인 수가 함께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자리가 증가하는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정작 장애인 근로자는 생활고에 허덕인다. 현행 최저임금법에는 최저임금 적용 예외 시 줘야 하는 임금의 하한선조차 없기 때문이다. 인가 사업장 709곳에서 고용부에 사전 제출한 임금 지급 예정액은 시간당 평균 3102원이다. 이마저도 실제 사업주가 장애인 근로자에게 준 금액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처우가 나쁜 곳에서 일하는 장애인은 500~1000원의 시급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월급보다 병원비가 더 많이 나올 수도
각종 활동비 명목으로 떼가는 금액 또한 적지 않아 손에 쥐는 돈은 그야말로 용돈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최저임금 예외 적용 사업장에서 근로하는 것이 ‘고용’보다 ‘재활훈련 겸 활동’의 성격이 커 사업장이 활동비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장애인 가족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법적 고용으로 분류돼 4대 보험에 가입돼 있고, 장애인들이 생산한 물품이 실제 사업장의 수익 창출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열악한 고용환경이 장애인의 자립보다 기초생활수급 지원금 등 정부 보조금에 기대도록 부추긴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부는 장애인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1991년부터 1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장애인 고용(민간 2.7%, 공공 3.0%)을 의무화하는 ‘장애인 의무고용제’를 시행해왔다. 장애인을 최저임금 적용 예외로 인정하는 것도 일단 일자리부터 많이 만들자는 판단에서였다.

전문가들은 적정 수준의 임금과 처우에 관한 하한선이 있어야만 실질적인 장애인 자립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장애인부모연대 관계자는 “사업장에서 받는 월급이 몇십만원에 불과하다면 어쩌다 다쳤을 때 병원비가 훨씬 많이 나올 것”이라며 “경제적인 수지타산만 생각한다면 집에서 쉬는 것이 이득인 구조”라고 지적했다.

◆뒤늦게 제도 개선 고민 중인 정부

국회에는 이미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다. 지난해 11월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적정 임금을 정해 사업주가 이를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주무부처인 고용부도 지난 2월 ‘장애인 임금문제 개선을 위한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2019년 초까지 제도개편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장애인도 인간다운 삶을 위해 최저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에 동의한다”며 “최저임금 제도 개편 등 장애인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장애인 최저임금 기준 마련과 함께 장애인 고용 사업장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인가 사업장 709곳은 대부분 A4용지, 박스 등을 생산한 뒤 ‘장애인 생산품’ 라벨을 붙여 공공기관 등에 납품한다. 업계에서는 장애인 생산품 구매액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임금이 오르면 사업장이 적자를 볼 가능성도 크다고 말한다. 한 장애인직업재활시설 관계자는 “장애인 최저임금 제도 개선의 취지가 장애인에게 돌아가는 각종 혜택을 늘리는 데 있는 만큼 이들의 일터인 사업장을 함께 배려하지 않는다면 실업에 따른 고통만 커질 우려가 있다”며 “장애인 생산품 구매 확대 등 종합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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