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근로시간 단축, 일하는 문화가 바뀐다

분·초까지 시간 절약 전쟁

'칼퇴근' 사수작전…담배 타임·서류 결재·끝장 회의 칼같이 없애

근로시간, 단 10분이라도 줄여라
삼성전자·LGD 등 대형 공장
공장 입구에서 걸어가면 20분 걸려
출입등록기 위치, 정문서 사무실로

이마트, 모든 임원 스케줄 매일 공개
직원들 '결재 헛걸음' 하는 시간 절약
롯데 "문서 없이 회의, 1시간 이내로"

“상무님이 외부 행사가 있어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30분까지는 자리를 비우시네. 오후 3시께 결재 받으러 올라갑시다.”

이마트 직원들은 임원 결재를 받기 전에 온라인으로 임원 스케줄부터 확인한다. 올 들어 모든 임원이 매일 사내 인트라넷에 자신의 스케줄을 올려놓으면서 생긴 변화다. 결재 받을 서류가 있어 찾아갔다가 임원이 없어 헛걸음하는 일을 없애기 위해 도입한 시스템이다. 임원 방에 갔다가 되돌아오는 시간은 길어도 10분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같은 시간까지 절약하자는 게 요즘 기업 분위기다.

대한민국 기업의 ‘일하는 문화’에 일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앞두고 불필요한 근무 시간을 줄이고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근로시간을 줄이는 첫 단계는 실제 근무에 포함되지 않는 시간을 덜어내는 일이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이 근로시간 단축 시범 시행에 들어가며 출입등록기 위치부터 바꾼 것이 대표적이다. 공장 출입구에 있던 출입등록기를 각 사무실과 작업장 등에 분산 설치했다. 정문부터 건물까지 직선거리만 1㎞가 넘는 경우가 많은 대형 공장의 현실을 고려한 조치다.

한 디스플레이업체 임원은 “공장이 크다 보니 공장 입구에서 출입증을 찍고 자신이 일하는 장소로 걸어가는 데만 15~20분이 걸린다”며 “주 5일이면 세 시간 이상이 실제 근로시간 이외에 추가로 늘어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담배를 피우거나 차를 마시는 등의 시간도 엄격하게 점검해 근로시간에서 제외한다. LG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직원이 스스로 근무에 포함되지 않는 시간은 근무시간에서 제외하도록 조치하고 있다. 직원들이 자신의 근로시간을 실시간으로 입력하고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며 10분 단위로 일하지 않은 시간은 빼도록 한 것이다.

셔틀버스가 일찍 도착해 업무시간보다 30분 먼저 사무실에 들어왔더라도 해당 시간은 근무시간에서 제외한다. 지금은 시범 시행 기간이라 성실하게 신고하지 않더라도 큰 불이익이 없지만, 7월 이후에는 출입 기록과 대조해 부풀려진 근무시간을 바로잡도록 지시가 내려질 전망이다.

한 전자업체 직원은 “흡연이 잦은 직원은 출근하자마자 하루 근무시간에서 1시간을 바로 차감하고 속 편하게 흡연실을 다녀온다”고 전했다.
회사의 방침만으로는 근무시간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보니 팀이나 부서별로 경쟁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기업도 많다. 올 들어 주 35시간 근무를 선제적으로 시행하는 신세계그룹이 대표적이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패션팀은 문서 결재를 완전히 없앴다. 모든 서류는 파일로 주고받으며 전자결재를 한다. 결재를 받기 위해 사무실을 이동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다. 기획팀은 회의 시간을 3~4시간에서 1시간으로 대폭 단축했다.

한 전자업체는 생산팀별로 과업을 부여했다. 팀원들의 노동 시간 총량을 일괄적으로 정한 뒤 이를 맞추도록 했다. 수행 여부는 팀장의 인사 평가에 반영했다. 이 과정에서 작업 준비 시간 등 생산과 직접적인 관계가 적은 업무의 시간이 대폭 줄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근로시간 단축의 가장 큰 적은 회의다. 많게는 수십 명의 근로시간을 하염없이 잡아먹을 수 있어서다. 롯데그룹은 계열사별로 ‘회의 없는 날’을 정하고 회의를 하더라도 종이 문서 없이 구두로만 하도록 방침을 정했다. 서면을 통해 습득해야 할 정보는 사전에 알고 들어와 핵심 내용만 빠르게 논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롯데닷컴은 ‘회의문화 111 캠페인’을 시행하고 있다. 회의 1시간 전부터 준비해 1가지 주제로만 회의하며, 1시간 이내에 끝낸다는 뜻이다.

시스템 개선을 통해 근로시간을 줄이는 곳도 있다. 이마트는 새로운 ‘카테고리 배송 시스템’을 도입해 배송 차량 10대를 기준으로 300분이 들던 물품 분류 작업 시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상품을 창고에 입고할 때 사람이 일일이 분류하던 시스템을 배송 차량에 실을 때부터 미리 분류하도록 개선한 덕이다.

밤샘 근무가 잦은 게임업계에서는 유연근무제와 탄력근무제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1주 40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출퇴근 시간을 유연하게 설정할 수 있는 유연 출퇴근제(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지난달 전면 도입했다.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30분 단위로 개인이 출근 시간을 선택해 하루 9시간(점심시간 포함)을 근무하는 방식이다.

신규 게임 출시 등을 앞두고 집중 근무가 불가피할 때에는 3개월 단위로 탄력근무제를 시행할 수 있다. 탄력근무제는 시기에 따라 업무량이 달라지는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 주당 최대 근로시간의 제약을 일정 기간 벗어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넷마블도 한 달 기본 근로시간 내에서 코어타임(오전 10시∼오후 4시, 점심시간 1시간 포함) 5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업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지난달부터 도입했다. 사전 연장근로를 신청하지 않으면 야간(평일 오후 10시∼다음날 오전 8시)과 휴일은 물론 월 기본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무도 금지된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불필요한 야근을 줄이고 게임 출시가 임박한 기간에 집중적으로 추가 근무를 하는 방식으로 근로 환경을 정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경목/안재광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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