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주권' 위협하는 美

외환시장 개입 내역 어디까지 공개하나

韓, 6개월마다 순매수액만 공개 우선 검토
"매수·매도액 드러나면 투기세력 먹잇감 우려"
美, TPP 원용… 월별 총액 공개 요구할 수도
미국 재무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환율보고서에서 “한국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조속히 공개하라”고 요구한 가운데 외환당국은 시장 개입 내역을 어디까지 공개할지 고민에 빠졌다. 미국은 외환을 어느 시점에 얼마나 사고팔았는지를 통째로 공개하길 원하지만 한국은 순증·순감액만 공개하길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는 19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및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회의에서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와 만나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다.

◆총액이냐 순액이냐가 관건

한국과 미국은 환율보고서 발표 전까지 외환시장 개방 수위에 대한 협상을 했다. 하지만 미국이 외환 매수·매도 총액 공개를 요구해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요구대로라면 한국은 외환시장에 개입해 미 달러화를 사고팔 때마다 그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한국은 순매수·순매도액만 공개하길 원하고 있다. 가령 이달 초 30억달러를 사들이고 이달 말 30억달러를 판다면 매수액을 제로(0)로 표기하는 식이다. 어느 시점에 얼마를 사고팔았는지는 노출이 안 된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매수·매도 총액을 공개하는 것과 순매수액을 공개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며 “매수·매도 총액을 공개하면 시장이 환투기 세력의 먹잇감이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외환당국이 매수·매도 내역을 공개하면 환투기 세력이 이와 반대로 움직여 시장을 교란하고 당국의 시장 개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매달 공개 vs 반기별 공개

공개 주기도 논란이다. 미국이 매달 공개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반기별 공개를 선호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부속 선언문에 들어간 조항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015년 만들어진 TPP 부속 선언문에는 미국의 요구로 12개 회원국이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한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최근 TPP 재가입을 타진하면서 미국은 당시 부속문을 참고해 한국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속문은 매수·매도 내역을 분기별로 3개월 이내의 시차를 두고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그동안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던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3개국은 예외적으로 순매수·순매도 내역을 반기별로 6개월의 시차를 두고 공개하기로 했다.

한국도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가 처음인 만큼 이들처럼 낮은 수준에서 공개해야 한다는 게 외환당국의 설명이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미국이 TPP에 재가입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 조항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한국에도 강화된 기준을 요구할 수 있다”고 했다.

◆G20 재무장관 회의 주목

이런 가운데 김 부총리는 오는 19일 열리는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라가르드 총재와 므누신 장관 등을 잇따라 만난다. 기재부 관계자는 “라가르드 총재 등과 환율 문제 등을 협의할 예정이지만 현지에서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방식을 결정할지는 미정”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TPP에 재가입하면 한국도 가입을 추진한다는 게 통상당국 내 분위기다. 정부 관계자는 “어차피 TPP에 외환시장 개입 공개 조항이 있기 때문에 하루빨리 공개하는 게 나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한국이 미국의 압력에 의해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게 외환당국의 고민이다. 이 때문에 기재부는 미국 현지에서 발표하는 대신 국내에서 추가 논의를 한 뒤 ‘주체적으로’ 공개 여부와 방식을 내놓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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