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미국 재무부의 ‘2018 상반기 환율보고서’가 발표됐다. 남북한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한·미 통상마찰 등 우리 경제를 둘러싼 현안이 수북이 쌓여 있는 여건에서 이번 보고서는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모았다. 발표 결과에 따라 우리 경제의 마지막 버팀목인 ‘수출호조→경기회복→주가 상승’ 간 선순환 고리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보고서와 관련해 궁금했던 사안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환율조작국에 걸릴 것이냐’ 하는 점이다. 2015년 무역촉진법에 따라 환율조작국에 지정되려면 △대미국 무역흑자 200억달러 이상 △경상수지흑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상 △외환개입비용 GDP 대비 2% 이상 등 이른바 BHC(베넷-해치-카퍼)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한국은 이번 보고서에서도 환율관찰대상국에 재지정됐다. 강화된 환율보고서 발표 이후 다섯 번째다. 신흥국 가운데 같이 출발했던 대만은 빠지고 중국은 환율관찰대상국에 계속 지정됐지만 경상수지 요건은 개선됐다. 한국만 유일하게 개선되지 않은 국가다. 미국이 ‘환율주권’ 침해 논란을 야기할 정도로 한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를 요구한 것도 이 근거에서다.

이 같은 흐름과 관련해 ‘한·미 간 플라자 협정이 체결될 수 있을 것인가’도 관심사였다. 1985년 플라자 협정 체결 이후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240엔대에서 79엔대로 급락한 점을 감안하면 한·미 간 플라자 협정이 체결된다면 원·달러 환율이 1000원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올해 안에 900원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교역국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근린궁핍적(beggar-thy-neighbor)인 플라자 협정이 체결되려면 국제적인 비난을 무릅써야 한다. 역설적으로 비난 이상으로 실익이 있어야 체결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 플라자 협정을 맺을 당시 미국을 제칠 것이라는 일본 위상에 비해 떨어지고 미국의 무역적자 주범국도 아니다.

정리돼야 할 문제가 있다. 이번 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한·미 간 플라자 협정과 환율조작국 지정을 동시에 우려하는 시각이다. 모순이다. 플라자 협정 자체가 환율 조작이기 때문이다. 환율조작국 지정과 환율주권 침해를 동시에 우려하는 시각도 잘못됐다. 환율주권 침해가 우려될 정도면 우리 외환당국의 개입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보고서 발표 직후 급부상하고 있는 관심사는 ‘과연 원·달러 환율 1000원이 깨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한·미 간 플라자 협정과 환율조작국 지정, 그리고 우리 외환당국의 개입 여지가 줄어든다면 원·달러 환율은 ‘머큐리(Mercury)’로 표현되는 펀더멘털 요인과 ‘마스(Mars)’로 지칭되는 중심국, 즉 미국의 정책(혹은 지정학적) 요인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머큐리 요인으로는 원·달러 환율이 지금보다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올해 성장률을 보면 미국은 작년 10월 전망 대비 0.4%포인트 상향 조정된 반면 한국은 3.0%에서 정체돼 있다. 10년7개월 만에 역전된 한·미 간 정책금리도 현재 0.25%포인트 격차가 0.5~0.7%포인트로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머큐리 요인과의 괴리가 우려될 정도로 원·달러 환율을 끌어내렸던 트럼프 정부의 달러 약세정책은 미국의 무역적자를 축소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지난해 미국의 무역적자는 직전 연도 대비 10% 이상 늘어났다. 올 들어 2월까지 1143억달러를 기록했고 이 중 중국과의 무역적자는 650억달러에 달했다.

달러 약세정책이 무역적자 축소에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미국 수출입 구조가 ‘마셜-러너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국제무역이론에서 고전적인 내용으로 다뤄지고 있는 이 조건은 외화표시 수출수요 가격탄력성과 자국통화표시 수입수요 가격탄력성을 합한 값이 ‘1’을 넘어야 평가절하가 무역수지를 개선시킬 수 있음을 뜻한다.

문제는 미국의 수출입 구조가 마셜-러너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수출상품은 비가격 경쟁력이 높기 때문에 수출가격 변화에 민감하지 못하다. 반면 미국의 수입상품은 소득불균형이 심한 상황에서 ‘있는 계층’은 수입품 가격변화에 별다른 영향을 안 받고, ‘하위 계층’ 수입품은 대체할 미국 제품이 적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난 1월부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 약세보다 강세를 선호한다고 언급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보고서 발표 직전까지 떨어지는 원·달러 환율에 편승해 제기됐던 900원 예상은 전형적인 ‘인포데믹’이다. 인포데믹이란 ‘information(정보)’과 ‘epidemic(전염병)’의 합성어로 잘못된 정보로 어려운 경제를 더 어렵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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