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데이터 패권 다툼 한창인데
'데이터의 금광'이라는 한국은
개인정보 활용 막는 규제 탓
빅데이터 관련 사업 어려워

4차 산업혁명委 끝장토론 통해
규제를 한목에 푸는 결단 내려야"

황영기 < 법무법인 세종 고문, 前 금융투자협회장 >

‘21세기 원유’ ‘디지털 시대의 금광’ ‘10년 후 100조원 시장’…. 많은 국가들이 경제성장률을 0.1%라도 올리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상황에서 이렇듯 희망적인 수식어를 가진 주인공은 무엇일까. 다름 아니라 ‘빅데이터’다. 산업 전반에 걸친 전자화, 모바일 확산 등으로 인한 데이터 폭증과 이를 처리·분석하는 기술혁신이 맞물리면서 빅데이터의 활용 가치는 나날이 높아만 가고 있다.

우리가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을 보며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AI) 기술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 이미 미국, 중국 등 선진국들의 글로벌 데이터 패권 다툼은 시작됐다. 이들은 몇 년 전부터 미래 먹거리로 빅데이터에 주목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2016년 미국의 데이터 관련 인프라 투자금액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구글) 3사만 합해도 36조5000억원에 달한다. 중국은 ‘2020년 세계 빅데이터 중심’을 목표로 국가 차원의 집중 육성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말 시진핑 주석은 고위 간부들에게 빅데이터를 업무에 활용하라고까지 지시한 바 있다. 그야말로 21세기 자원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인프라, 스마트폰 보급률, 방대한 공공데이터를 보유한 대한민국은 어떤 상태인가. 빅데이터 석학인 톰 데이븐포트 미국 뱁슨대 교수는 한 국내 강연에서 “한국은 데이터의 금광이면서도 제대로 캐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세계적으로 비교해도 매우 엄격한 데이터 관련 규제, 특히 개인정보 규제가 자리하고 있다.

현행 개인정보법상 개인정보를 수집·이용·제공하기 위해서는 단계마다 사전 동의가 요구되며, 수집 목적 내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개인정보 관련 규제는 의료법, 위치정보법, 정보통신망법, 개인신용정보보호법 등 20여 개 개별법에 흩어져 있어 데이터를 활용한 빅데이터 사업 영위는 사실상 어렵다. 이런 사례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출시된 갤럭시 S8은 헬스케어 앱(응용프로그램)을 탑재했음에도 개인의료정보 활용을 막는 의료법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서비스 제공조차 불가능하다. 애플워치가 관련 앱을 대형 병원과 연계해 만성질환자 관리에 활용하고 있는 현실과 매우 대비된다.
또 자율주행차 시대가 도래했지만 자율주행차에 사람이 탄 경우 개인정보법과 위치정보법상 위치정보가 개인정보에 해당돼 활용이 금지된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해 2016년 7월 행정안전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으나, 이 역시 법적 효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이라는 점과 시민단체 반대 등으로 인해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개인정보 보호가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 페이스북 사례가 이를 잘 말해 준다. 다만 우리는 활용과 보호 중 너무 ‘보호’에만 치우쳐 균형을 상실했다는 게 문제다. 최근 유럽연합(EU)과 일본에서는 가명(익명)화된 비식별 정보는 법 적용에서 제외해 이용 가능토록 하면서도 법 위반에 대한 처벌 규정은 강화함으로써 데이터 보호와 활용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일부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으나, 주요국들이 한참을 앞서 달리는 상황에서 더 이상 개별 부처들이 20여 개 관련법을 일일이 개정하는, 길고도 힘든 과정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그래서 필자는 제안한다. 현재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에서 주요 규제개선 사항의 하나로 빅데이터 활용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이 위원회에서 대통령 주재 아래 개인정보 관련 법들을 관장하는 모든 부처 장관, 학계 전문가, 시민단체, 업계가 한자리에 모여 끝장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이런 논의 과정을 TV로 생중계해 역사와 국민 앞에 자신의 주장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고, 토론 결과를 가지고 대통령은 개선 과제와 담당 부처, 처리 기한 등이 담긴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발표하고 추진해 나가는 것이다.

창의와 혁신에 기반한 산업을 규제의 틀로 옭아매면 첫발조차 내디딜 수 없게 된다. 이는 필자가 투자자 보호라는 명목 아래 규제 일색이던 금융업계에 오랜 기간 몸담으며 경험한 바다. 규제개혁 없이는 현 정부가 내세운 ‘혁신창업 국가’도 요원하다. ‘거지양륜(車之兩輪)’, 두 개의 수레바퀴처럼 산업육성과 개인정보 보호 간의 균형을 찾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