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술 호시탐탐 노리는 중국
中, 황철성 서울대 교수에 "2시간만 만나달라"

中 컨설팅업체·지방정부
"프로젝트 같이하자" 매달려

"100명씩 팀 꾸려 와달라"
기술자 통째 이직 제안도

"고용부, 핵심기술 공개 결정
중국 두 손 들어 반길 것"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반도체 전문가인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최근 1주일 사이 중국 측에서 두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한 곳은 중국 정부에 기술 조언을 한다는 컨설팅업체, 다른 한 곳은 중국 남부 진장시 정부였다. “한국의 반도체 노하우를 넘길 수 없다”는 황 교수의 대답에 이들은 “그래도 2시간만 만나자”며 집요하게 매달렸다. 고용노동부가 설비 배치와 공정, 화학약품 정보 등이 담긴 ‘작업환경 측정보고서’를 공개하겠다고 윽박지르는 한국 반도체 기술의 국제적 가치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끈질기게 매달린 중국 직원

진장시 정부는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지를 중심으로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할 것”이라며 “이미 필요한 자본과 토지를 갖췄으니 도움을 달라”고 했다. 중국 컨설팅업체 토우셔는 “중국 정부는 막대한 재정을 투자해 반도체산업을 육성하고 있다”며 “해당 프로젝트를 소개해 서울대가 참가할 기회도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들은 단기적으로는 반도체 관련 기술 컨설팅, 중장기적으로는 관련 전문 인력 양성까지 요청했다. 황 교수는 “한국 반도체 노하우를 날로 먹으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이들의 집요함에 식은땀을 흘렸다”고 말했다.

3차원(3D) 낸드플래시를 발명한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은 지난달 중국의 반도체 관련 최대 행사인 ‘세미콘 차이나’에서 중국 메모리업체 관계자를 만났다. 이 관계자는 공개 강연을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오는 이 소장을 붙들고 “제발 우리 회사에 와서 며칠만 이야기해달라”고 매달렸다.

한국 반도체 산업계 인력에 대한 구애도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관련 회사에서 임원으로 일하다 퇴직한 한 인사는 최근 중국 지방정부 관계자로부터 “공정별로 한국 기술자 100명으로 팀을 꾸려 와서 일하면 안되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기술자 몇 명으로는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공정 전체를 파악할 수 없으니 공장을 돌릴 수 있는 엔지니어를 통째로 데려가고 싶다는 것이다.

◆미진한 ‘반도체 굴기’가 이유
중국의 반도체 관계자들이 한국 대학을 직접 접촉한 것은 전에 없던 일이라는 게 국내 반도체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1~2명씩 소규모로 하던 이직 제안의 규모가 훨씬 커진 것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그 배경에는 중국 반도체산업의 절박감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2015년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하고 2016년부터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말부터 자체 생산한 D램과 낸드가 쏟아져야 하지만 여의치 않다. 중국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정상적이라면 웨이퍼 한 장에 수백 개씩 생산됐어야 할 D램이 1~2개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양산까지는 2년이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최대 반도체업체 칭화유니의 자오웨이궈 회장이 지난 10일 자회사 두 곳의 대표직을 내려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양루이린 대만 공업기술연구원 소장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목표에 크게 못 미치면서 중국 정부가 자오 회장의 경영성과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인수합병(M&A)을 통한 반도체 기술 확보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화웨이로의 통신 반도체 기술유출 가능성을 우려해 싱가포르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를 불허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한국에서 반도체 기술과 노하우를 확보하려는 중국의 의지가 더욱 강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고용부는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공개 결정을 내린 보고서에 ‘공정별 화학물질 사용상태’가 포함됐다고 밝혔다. 공정별로 취급하는 화학물질의 종류와 양이 명시돼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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