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흥망성쇠는 정치제도에 좌우돼
극에 달한 정치불신과 지역주의 해소 위해
양원제 포함한 개헌 방안 신중히 논의해야

김태기 < 단국대 교수·경제학 >

3대에 걸친 전직 대통령의 비극은 갈 데까지 간 한국 정치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정치 불신을 넘어 증오와 복수가 판을 친다. 시민단체는 정치행동단체로 둔갑하고 국회와 정당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됐다. 가짜뉴스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만나 활개 치면서 방송과 언론은 정치 선전의 도구가 됐고, 사법부는 여론에 눌려 법치주의를 포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관료들은 적폐 청산의 칼춤에 움츠러들어 전전긍긍하고 정권 입맛에 맞는 평론가들이 설치며 지식인들은 눈치만 보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한국을 간단치 않게 봤던 국가들은 극에 달한 혼란을 직접민주주의로 치켜세우는 어리석음을 조롱한다. 중국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을 했고 북한은 핵 위협보다 평화공세로 내부를 붕괴시켜 흡수하는 편이 낫다고 봤는지 태도가 돌변했다.

헌법은 국가의 권력구조를 규정한다. 작금의 혼란은 1987년 개헌 성적표다. 민주화라지만 유력 정치인의 나눠 먹기식 개헌은 국민을 사분오열시켰다. 지연과 학연이 선거를 좌우하고 불신이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팽배했다. 사망선고를 받은 사회주의가 유령처럼 떠돌며 지역주의를 자극해 회생의 발버둥을 쳤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개헌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개헌안은 현재 헌법보다 더 뒤죽박죽이다. 정치 불안의 근본 원인인 지역주의를 해소하기는커녕 더 키운다. 대통령 중임제로 임기를 8년으로 연장하는 대신 국회 권한을 키우고 대표성을 강화하자고 한다. 그럴싸하지만 대구, 광주, 충청 등 지역정당이 활개치고 여기에 이념정당이 합세해 정당 난립은 고질적 문제가 된다. 이런 판에 연방제식 지방분권국가 개헌은 최악의 조합으로 지역할거주의에 날개를 달아줘 실패한 권력구조를 만들게 된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정치제도에 좌우된다. 세계 각국의 발전 경험에 대한 실증 분석이 이를 보여준다. 성공한 나라와 실패한 나라는 헌법도 일정한 패턴이 있다. 성공한 국가는 헌법 조항이 적다. 선진국은 100개가 안 된다. 헌법은 국민의 재산권 보호와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에 집중하고 토지공개념 등 잡다한 문제는 법률이 다룬다. 대통령제 국가는 양당제를, 내각책임제 국가는 다당제를 선택한다. 대통령제에서 정당이 난립한 국가는 혼란스럽다. 인구가 많고 경제 규모가 큰 나라는 국회가 상·하원 양원제다. 인구 2000만 명이 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3개국에서 11개, 전 세계적으로 4000만 명이 넘는 국가의 3분이 2, 연방제 국가의 100%가 양원제를 택하고 있다. 양원제가 단원제보다 국정 안정에 효과적이고, 시간이 걸려도 국민 의사를 잘 반영한다.

야당은 대통령 개헌안이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줄이지 못한다고 반대한다. 이 또한 당리당략에 의한 꼼수다. 대통령이 제왕적이라면 국회는 막가파라고 비판받는다. 국회는 이익집단에 휘둘려 스스로 대의민주주의 실패를 초래했다. 국회 법안 발의는 1980년대 평균 1000건에서 2010년대는 무려 1만5000건이 됐다. 정당과 국회의원은 힘자랑하듯 경쟁적으로 법안을 남발했다. 법안은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치중하고 공공의 이익은 외면했다. 제왕적 대통령제만큼 무소불위한 국회도 부패해 국민의 불신을 키웠다. 불신은 규제를 강화하게 만들고 강해진 규제는 또 다른 불신을 일으켜 악순환이 생겼다. 한국이 OECD 국가 중에서 정부 불신이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증오의 정치를 신뢰의 정치로 바꾸도록 야당도 개헌에 적극 나서야 한다. 대통령 권한을 약화시키되 국회도 즉흥적이고 특정 집단에 휘둘리지 않도록 국정 숙의 기능을 강화하고, 지역주의 압력은 줄이며 국정의 안정성을 높이도록 정치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양원제는 이런 시대적 요구를 충족한다. 그러나 개헌 논의에 양원제는 고려 대상에 들어가 있지 않다. 국민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올바른 개헌을 요구한다. 여야는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상원과 하원의 견제를 받고 상원과 하원도 상호 견제함으로써 정치의 대표성과 책무성을 모두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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