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 논설위원

1938년 9월, 윈스턴 처칠 영국 하원의원은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과 ‘뮌헨협정’을 맺은 영국과 프랑스 총리를 향해 “노상강도를 당했다”고 비판했다. 그해 2월 오스트리아를 집어삼킨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 내 독일인이 많이 살고 있던 수데텐 지방까지 합병하려 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협상에 나섰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의 요구를 수용하는 내용의 뮌헨협정에 사인을 했다. 영국과 독일은 “최후의 영토 요구”라는 히틀러의 말을 믿었다.

처칠은 “1파운드를 주면 상대는 2파운드를 요구할 것”이라며 “뮌헨협정은 영국과 프랑스가 히틀러에게 완패당한 가짜평화 협정”이라고 날을 세웠다. 처칠의 예언대로 히틀러는 이후 영토 확장에 본격 나섰다.

그랬던 처칠이 1945년 2월 2차대전 종전 뒤처리를 논의한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에게 당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아이러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옛 동유럽 국가들을 소련의 위성국가로 만들어준 얄타회담을 ‘소련 외교의 금자탑’이라고 평가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처칠은 전후 평화 유지에 소련의 협조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어지간한 소련의 요구를 다 들어줬다.

전형적인 통일전선전략 구사

폴란드에서 소련이 지지한 루블린 임시정부를 승인해준 게 대표적인 예다. 소련이 폴란드의 동쪽 영토를 합병하는 계획도 인정했다. 미국과 영국 소련 정상은 자유투표를 통해 폴란드 정부를 공식 출범시키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회담 중에도 소련 비밀경찰들은 동유럽 국가에서 반공주의자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몰래 하고 있었다. 스탈린은 결국 동유럽 지역을 송두리째 삼켰다.
스탈린은 회담 전 측근들에게 “파시스트에 대응해 자본주의 도당과 손을 잡았지만, 조만간 자본주의 도당과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형적인 공산주의 통일전선전략이었다. ‘세계 혁명을 위한 영토 확장’을 노린 스탈린은 발톱을 감췄고, 루스벨트와 처칠은 스탈린의 유화적인 제스처에 넘어갔다.

오는 27일 남북한 정상회담과 다음달 말 또는 6월 초 미·북 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린다. 그간 “‘정의의 보검’인 핵을 내려놓을 수 없다”고 외쳐왔던 북한이 비핵화를 의제로 삼겠다는 진전된 자세를 보이고는 있다. 그럼에도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북한을 과연 믿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북한이 보상만 챙기고 뒤로는 핵·미사일 개발을 되풀이해왔던 전력(前歷) 탓이다. 남북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참여한 6자회담도 핵무장을 위한 시간벌기용으로 이용했다.

위장된 평화 발붙여선 안돼

김정은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과 러시아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미는 것은 실패한 6자회담을 살리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많다. 김정은이 중국과 러시아를 ‘뒷배’로 삼아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조건과 관련한 요구 수준을 급격히 높일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가 비핵화 단서로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을 내건 노림수도 뻔하다.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나아가 한·미동맹 해체까지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이다.

남북한 정상회담이 결코 녹록지 않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회담에서는 무엇보다도 북한 비핵화 논의에 집중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얼굴을 붉힐 각오도 돼 있어야 한다.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이행의지를 최대한 끌어내야 미·북 정상회담도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위장된 평화가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어정쩡한 타협은 안 된다. 뮌헨과 얄타회담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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