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조선 노사합의서 지각 제출

'데드라인' 계속 미룬 산업은행
"시한 안지키면 법정관리"→"시간 더 줄 것"
"산은, 구조조정 대상기업에 잘못된 시그널 줘"

STX조선해양 노사는 10일 인건비 감축 방안 등이 담긴 합의서를 산업은행에 제출했다. STX조선 근로자가 이날 오전 경남 창원시 원포동 본사 정문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은행이 STX조선해양 노조에 끌려다니면서 시한을 연장해주지 않기로 한 구조조정 원칙을 스스로 어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산은이 지난 9일까지 STX조선 노사 확약서를 받지 못했음에도 법정관리 결정을 내리지 않은 데 이어 10일에는 1주일가량의 시간을 사실상 더 줬기 때문이다.

STX조선 노사는 10일 오후 늦게 자구계획에 대한 노사 합의서를 산은에 제출했다. 산은은 “STX조선이 제출한 자구계획안이 기존에 받은 컨설팅에서 제시한 자구 수준 이상을 충족하는지 검토해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수용 여부를 조속히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산은은 지난달 금호타이어에 이어 이번에도 노조 측에 ‘데드라인’을 연장해주면서 시장과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데드라인’ 잇달아 연장한 산은

산은은 당초 제출 시한이었던 ‘9일 오후 5시’를 넘기면 곧바로 법정관리를 신청할 것이라는 방침을 고수해왔다. 정부가 지난달 8일 STX조선 경영을 정상화하는 조건으로 인력 감축 등 강도 높은 자구안에 대한 노사확약서 제출 시한을 이때까지로 정한 데 따른 것이다. STX조선 노조를 설득하기 위해 경남 창원에 머물던 성주영 산은 부행장은 제출 시한 당일인 9일 오전 “제출 시한은 오후 5시로 변함이 없다”며 “시한을 넘기면 원칙대로 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부터 이어진 노사 협상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산은 관계자들의 발언이 계속 바뀌기 시작했다. 제출 시한인 오후 5시가 다가오자 산업은행 측은 “오후 5시는 STX조선의 업무시간 기준일 뿐”이라며 “데드라인은 9일 밤 12시”라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9일 밤 12시가 넘었음에도 산은은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STX조선은 10일 새벽 1시20분께 “노사가 자구계획 이행방안 중 인건비 부분에서는 상호 합의에 근접했고, 10일 조합 내부 절차에 따라 세부사항을 결정해 결과를 채권단에 제출할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산은은 10분 뒤인 새벽 1시30분께 “STX조선 노조가 기한인 9일까지 자구안을 제출하지 않아 원칙적으로 회생절차로의 전환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마저도 ‘원칙적으로’라는 불분명한 표현을 통해 시한을 연장해주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구조조정 원칙 훼손한 산은

STX조선 노조는 10일 오전 9시께 희망퇴직 등 인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 대신 6개월 무급휴직과 임금·상여금 삭감을 통해 정부와 채권단이 요구한 생산직 인건비 75% 절감 효과를 내는 방안을 담은 자구계획안에 합의했다. STX조선 노조는 노사합의서를 이날 오후 늦게서야 산은에 제출했다.

산은 고위 관계자들은 STX조선 노조가 마감 시한을 지키지 않았는데도 이날 STX조선 노사가 자구계획안에 합의했기 때문에 법정관리 신청을 유예할 수 있다는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노사가 제출 시한을 넘겼지만 만족할 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면 법정관리 신청을 유예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산은 관계자도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하기까지 1주일 정도 서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법정관리 신청까지 최대 1주일 정도의 시간을 STX노조 측에 더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산은이 잇달아 노조 측에 ‘데드라인’을 연장해주면서 ‘구조조정은 시간을 끌지 않고 원칙적으로 처리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구조조정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산은은 금호타이어 노조가 지난달 30일까지였던 해외자본 유치 합의 시한을 지키지 않았음에도 이틀가량의 시간을 유예해줬다.

강경민/박신영/김보형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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