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핵심 공정기술 공개 '논란'
고용부 "정보 적극 공개하라" 지침

글로벌 경쟁사들 주목하는 평택 반도체공장
설비 배치에 화학물질 모델명까지 공개키로
"中에 넘어가면 큰일 날 핵심기술" 업계 충격
“공공성만 입증하면 기자님께도 못 드릴 이유가 없습니다.”

고용노동부 담당자는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배치도를 나도 볼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고용부는 한 종합편성채널 PD에게 경기 기흥과 화성, 평택 공장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를 넘기기로 결정했다. 해당 PD는 산업재해 피해자들과 관계가 없는 인물이다.

◆“삼성 공정 정보, 방송해도 무방”

고용부가 방송사 PD에게 보고서를 넘기기로 한 삼성전자 평택공장은 64단 3차원(3D) 낸드플래시를 생산하는 최첨단 반도체 공장이다. 중국 업체는 물론 일본 도시바, 미국 마이크론 등 글로벌 반도체업체들이 주목하고 있는 곳이다. 어떤 생산설비를 어떻게 배치했는지 하나하나가 관심사다. 이런 정보가 담긴 내용을 방송 화면에 내보내더라도 현행 정보공개법에서는 제재할 방법이 없다.

고용부는 지난 2월 초 2심인 대전고등법원 판결(백혈병 사망사고가 난 온양 반도체공장 작업환경 측정보고서 공개 결정)로 삼성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에 대한 보고서가 영업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설령 영업 비밀이더라도 공익을 위해서라면 국민 누구에게나 줄 수 있다”며 “방송국이라고 해서 주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전자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특정 공정라인 다음에 어떤 설비가 들어오는지 등은 수백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결정된 생산 노하우라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생산에 뛰어든 1983년에는 기술자들이 일본 공장을 견학하며 생산설비 사이의 거리를 발자국 수로 세어가며 어림셈했을 정도로 후발주자에게는 중요한 정보다. 화학약품도 A모델을 사용하느냐, B모델을 쓰느냐에 따라 각 생산단계의 공정기술 방향을 유추할 수 있다.
재판부의 정보공개 판결은 온양공장에 한정된 것인데 다른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공장까지 확대 적용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온양공장은 생산된 반도체를 재가공하고 포장하는 후공정 공장으로, 메모리반도체를 직접 생산하는 화성·평택 공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진다. 김진우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정보공개 청구에서 요청 대상이 되는 자료 범위는 구체적이어야 한다”며 “온양공장에 한정된 법원 공개 결정을 근거로 고용부가 다른 공장 자료까지 공개하겠다고 하는 것은 법원 판결의 범위를 초월한 것으로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삼성, “중요 기술만은…”

삼성은 행정소송을 통해 공정 정보의 기밀성을 인정받되 산업재해 입증과 관련된 정보는 최대한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달 26일, 삼성전자는 이달 2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본격적인 소송이 시작되기 전 고용부가 자료를 공개하는 일을 막기 위해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정보공개 집행 정지 신청도 냈다.

삼성은 산재 피해 당사자에게는 산재를 입증할 충분한 자료를 제공할 예정이다. 공장 내 인력 운용 현황과 공장 공기에 대한 화학물질 분석, 공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 전체는 내놓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피해자가 필요로 하면 자료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산업재해 문제 해결에 최대한 협조하면서도 경쟁사에 이득이 될 수 있는 기술 유출은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업계에서는 삼성 주요 사업장에 대한 보고서 전면 공개 조치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삼성은 물론 반도체·디스플레이 사업장의 공정 관련 정보를 고용부에서 받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기업의 영업기밀이 국민 누구든 알 수 있는 공공 정보가 돼 버렸다”며 “한국에 공장을 설립하는 일을 꺼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경목/심은지/신연수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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