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사태' 등 환율 피해 경험
위안화 절상 나선 中과 상황 달라
외환정책 자율성 훼손 안돼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북·중 정상회담, 남북한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한·미 간 금리역전, 제2 외환위기설, 한국판 플라자 합의 논쟁…. 최근 우리 경제를 둘러싼 메가톤급 현안들이다. 각각의 현안에 호재와 악재 요인이 겹쳐 있는 만큼 명암을 파악하기 어려워 더 혼란스럽고 주가 등 각종 가격변수의 변동성도 크게 확대되고 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국판 플라자 합의’ 논쟁이다. 플라자 합의란 1980년대 초 미국과 일본 간 국제수지 불균형의 주범인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해 엔화 강세를 유도한다는 양국 간 합의를 일컫는다. 10년 동안 지속됐던 플라자 체제에서 엔·달러 환율은 240엔대에서 79엔대로 폭락했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일본 경제는 소니와 도요타로 대변되는 막강한 제조업 경쟁력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란 기대와 예상이 함께 나왔다. 하지만 일본 경제는 플라자 합의 이후 급속히 진행된 엔화 강세 부담으로 ‘디플레이션 탈피’를 공식 선언한 지난달까지 장기간 침체를 겪었다.

제2 플라자 합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국가는 중국과 한국이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마찰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가운데 최근 위안화 가치가 연일 뛰어오르고 있다. 시진핑 정부 의지가 반영되는 중국 환율제도 특성상 위안화 가치를 올려 고시하는 것은 미국과의 무역마찰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시각에서 플라자 합의 가능성이 나온다.

위안화 평가절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학수고대해 온 관심사이자 과제였다. 대선 기간부터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약속해온 상태에서 지금까지 이 공약을 지키지 못해 부담을 느껴왔다. 미국 무역적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과의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도 위안화 가치는 절상돼야 한다.

중국도 위안화 절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위안화 국제화 과제,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편입,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등을 통해 국제위상을 높이려고 노력해 왔다. 중국 중심의 ‘팍스 시니카’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안전통화로서 위안화 기능이 높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비 때마다 환율로 어려움을 겪어온 한국은 중국과 사정이 다르다. ‘키코(KIKO)’ 사태가 대표적이다. 중소 수출업체들은 금융위기 이후 원·달러 환율 하락을 전제로 환 헤지를 했다. 하지만 ‘마진 콜(증거금 부족)’을 당한 미국 금융사의 디레버리지(투자자산 회수) 과정에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해 환차손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0년이 지난 현시점에서는 키코 사태의 정반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역(逆)키코 사태’다. 2015년 12월 이후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달러 강세)할 것으로 우려한 수입업체(글로벌 투자 금융사)들이 이번에는 반대로 환 헤지를 걸어놓았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자 상당 규모의 환차손을 입고 있다.

달러 투자자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개인의 달러 예금은 130억달러가 넘는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할 때마다 달러 예금이 늘어나고 있다. Fed의 추가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 기대가 남아 있고 언제든지 높아질 수 있는 한반도 지정학적 위험을 겨냥해 이기적으로 달러를 사들인 결과로 이해된다.

곤혹스러운 것은 우리 외환당국이다. 역키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리면 트럼프 정부로부터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면 키코 사태 이상으로 환차손이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최근 거론되는 한국판 플라자 합의 논쟁에 어떤 입장도 내놓을 수 없는 현 정부가 처한 어려운 여건이다.

트럼프 정부의 통상압력은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출범 이후 1년 동안 미국 이익만을 생각하는 ‘극단적 보호주의’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적자는 오히려 확대됐다. 오는 11월 중간선거 이전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 트럼프 대통령과 집권당인 공화당이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민과 함께 풀어야 한다. 환율은 통화 간 교환비율로 근린궁핍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일방적으로 오르거나 떨어질 수가 없어 수익률이 적고 수수료도 비싸다. 우리 경제를 둘러싼 메가톤급 현안이 겹친 틈을 타 달러 사재기에 나서는 것은 우리 경제를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곤경에 빠트리는 이기주의적 행동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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