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국회에 맡겨달라는데…
개헌특위 운영 14개월 동안
회의 67회·국민토론회 11회…
합의는 단 한건도 없어

소수 야당, 선거구제에 올인
권력구조·선거구제 개편 맞물려
타협보다 '밥그릇 싸움' 양상

'권력 빼앗기'로 변질된 개헌 공방
대통령 연임이냐, 이원집정부제냐
"권력 나누기에만 함몰" 비판도

김형호 정치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 승부수에 국회가 외통수로 내몰리고 있다. 오는 26일 대통령 개헌안이 발의되면 국회는 두 가지 선택지만을 남겨 두게 된다. 앞으로 한 달 안에 여야 합의안을 별도로 마련해 대통령안을 철회시키거나, 대통령안을 발의 60일 이내인 5월25일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하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야 4당이 일제히 대통령의 개헌 발의에 반대하고 있어 국회가 합의안을 만들지 않으면 재적의원 3분의 2가 필요한 대통령 개헌안의 부결은 불 보듯 뻔하다. 김성태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부결이 뻔한 대통령안을 발의하겠다는 것은 개헌 반대 세력으로 낙인찍어 지방선거에 활용하려는 의도”라며 반발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다른 야당에서는 “대통령은 개헌안을 발의하지 말고 국회 논의에 맡겨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국회에 맡겨두면 개헌안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까. 20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확인한 결과 2017년 2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는 지난 14개월 동안 전체회의 34회, 소위원회 33회를 소집했다. 이 기간에 국민토론회 11회, 개헌특위 자문위원 회의는 무려 136회가 열렸다. 하지만 여야 5당이 참여한 개헌특위는 지금까지 개헌과 관련해 단 한 건의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지난 14개월 동안 도대체 국회는 무엇을 했냐”며 개헌안 발의 카드를 꺼내 든 청와대 논리를 국회가 공박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는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연합뉴스

개헌안은 여야 5당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국회 안에서 좀처럼 타협점을 찾기 어렵다. 개헌을 둘러싼 제1전선은 권력구조다. 청와대·민주당과 제1야당인 한국당이 대치하고 있는 지점이다. 개헌특위 논의가 지난 14개월 동안 공전할 수밖에 없는 핵심 이유다. 여권의 4년 연임 대통령제와 제1야당의 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가 첨예하고 맞서고 있다.
개헌 논의의 또 다른 전선은 개헌과 무관한 선거법 개정이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소수 야당은 개헌 논의를 계기 삼아 선거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전국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를 할당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찬성하는 당이면 누구와도 손을 잡겠다”며 개헌 전선에서 보수야당인 한국당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인영 민주당 개헌특위 간사는 “개헌보다 어려운 게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선거법 개정인데 어떻게 동시에 풀어내겠느냐”며 야당의 공조 움직임에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국회의 개헌 주도권 상실은 여야 정치권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정치적 득실만 따지는 바람에 개헌을 위한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다는 비판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권력구조 문제의 핵심은 대통령제의 견제기능을 강화하는 것인데 여야가 권력 분산에만 너무 초점을 맞추면서 논의가 헛돌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 개헌안이 발의되면 여야가 4년 연임 대통령제와 이원집정부제 사이의 타협점을 찾을지가 최대 쟁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회가 대통령의 분산된 권력을 가져 오는 문제에 함몰돼 개헌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수세에 몰린 국회의 개헌 주도권 회복 여부는 여야가 중재안을 도출해낼 수 있는 정치력에 달렸다.

chs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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