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횡령에 폐교돼도 설립자 재산은 '노터치'
잔여재산 국고귀속 '비리사학 철퇴법' 통과 불발

지난해 12월 세종 교육부 앞에서 서남대 폐교명령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 사진=연합뉴스

전선(戰線)은 교착되었다. 문 닫는 학교의 잔여재산 귀속 문제를 다루는 사립학교법 개정안, 일명 ‘비리 사학 철퇴법’ 또는 ‘서남대법’ 얘기다.

개정안은 지난달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에 걸렸다. 서남대는 설립자 이홍하씨의 교비 333억원 횡령 비리로 경영이 어려워져 지난달 결국 폐교했다. 문제는 서남대의 잔여재산이다. 현행 사학법상 잔여재산 600억~800억원이 이씨 일가가 운영하는 대학들로 넘어가게 됐다.

이 금액을 이씨 부인(서호학원)과 딸(신경학원)이 운영하는 대학이 가져가지 못하게 제한을 두는 내용이 개정안의 골자. 개정안이 통과돼야 대학구조개혁의 일환으로 교육부가 내건 ‘사학 비리 엄단’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법사위에서 막힌 이유는 늘 거론되어오던 것이다. 사학의 자율성과 재산권 보장 논리다. 개정안을 강력 반대한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미 문 닫은 서남대에 대한 소급입법으로 위헌 소지도 있다”는 주장을 폈다. 개정안은 김 의원이 위원장인 법안심사 제2소위로 넘어가 사실상 통과가 어려울 전망이다.

'사학 스캔들'에 휩싸인 아베 총리. / 사진=한경 DB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던 비리 사학 철퇴법 논의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인 유성엽 민주평화당 의원이 이달 18일 “교문위를 통과한 개정안이 일부 야당 반대로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문제제기하면서 재조명 받았다.

특히 그는 연일 터져나오는 ‘사학 스캔들’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위기에 처한 일본과 비교하면서 “한국은 단군 이래 최대 사학 비리조차 관련법이 없어 ‘먹튀’를 방치하고 있다. 사학 비리 엄단 없이는 교육 적폐를 해소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최근 모리토모(森友)학원의 국유지 매입 관련 결재문서 조작에 연루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유 의원은 “사학법 개정이 안 되면 수백억원대 서남대 잔여재산이 고스란히 횡령 당사자인 이홍하의 가족에게 돌아간다”며 “정치권 외면으로 법안 통과가 지연되면서 비리 사학의 먹튀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현행 사학법 35조는 학교법인 해산시 잔여재산을 ‘정관으로 지정한 자’에 귀속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남대 법인 서남학원은 정관상 폐교시 잔여재산을 이씨 일가가 운영하는 신경·서호학원 등에 귀속하는 것으로 돼있어 법의 맹점을 악용한 먹튀 행위가 가능한 상황이다.

유성엽 교문위원장은 '비리 사학 철퇴법' 통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사진=한경 DB

때문에 유 의원이 대표발의한 사립학교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설립자 비리 등으로 문을 닫는 사학의 경우 ‘예외적’으로 잔여재산을 국고에 귀속시킬 수 있는 조항을 넣었다.

사학 재단 해산시 사실상 설립자가 잔여재산을 돌려받는 길을 터놓은 해당 사학법 조항(사유재산권)과, 국고 등에 귀속하는 방향의 개정론(교육공공성)은 여야가 이전 정부에서부터 장기간 대치해온 사안이다.

보수진영은 설립자 출연재산까지 국고에 귀속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로 본다. 한국당의 반대 논리가 여기에 속한다. 반면 진보진영은 잔여재산에 대한 설립자 재산권을 인정할 경우 고의적 폐교 등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반박해왔다. 진보진영 일각에선 설립자의 최초 출연재산 분에 한해 되돌려주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기류도 감지된다. ‘한계 대학’의 자발적 퇴출을 유도하자는 취지다. 단 비리로 인한 폐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결국 비리 사학의 잔여재산 국고 환수 여부가 핵심 쟁점이다. 한 교육계 인사는 “사학의 자율성과 재산권은 보장돼야 한다. 단 비리 사학에 대해선 선을 그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보수진영이 국지전마저 내주지 않으려 버티다가 전체 전선이 서서히 밀리는 ‘느리지만 확실한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이번 개정안은 비리 사학의 잔여재산 귀속에 한정한 ‘최소한의 법안’이다. 이것까지 사학 자율성과 재산권 침해 논리로 무산시키면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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