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경주' 월드랠리챔피언십

레이싱카 아닌 '양산차 철인 대결'
시청자 8억명… 차세대 기술 경연장
현대차, 올 시즌 첫승 쾌조의 스타트

흔히 모터스포츠라고 하면 납작한 레이싱카가 굉음을 내뿜으며 서킷을 달리는 포뮬러원(F1) 대회를 연상하기 쉽다. 폭발적인 스피드를 뽐내는 경주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하지만 가끔은 동떨어진 세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월드랠리챔피언십(WRC)은 F1과 다르다. 전용 서킷은커녕 자갈길과 눈길을 달린다. 경주용 랠리카도 날렵하게 잘 빠지기보단 평범한 일반 승용차를 닮았다. WRC가 F1보다 친근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자동차 경주의 ‘철인 경기’

2018 월드랠리챔피언십(WRC)에 출전한 현대자동차.

WRC는 국제자동차연맹(FIA)이 주관하는 대회로 F1과 함께 국제 자동차 경주 대회의 양대산맥을 이룬다. 스웨덴과 멕시코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세계 13개국에서 벌어지는 WRC는 자동차 경주의 ‘철인 3종 경기’로 비유되기도 한다. 영하 25도 극한 추위의 스웨덴과 숨이 턱턱 막히는 멕시코 고산지대를 누벼야 하기 때문이다. 참가팀은 경기가 열리는 지역마다 극과 극으로 다른 기상 조건을 견디며 연간 1만㎞ 이상을 달려야 한다. 세계 모터스포츠 팬들이 F1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껴 WRC에 열광하는 이유다.

랠리카는 F1처럼 경주용으로 특수 제작된 차량이 아니다. WRC 참가 차량은 연간 2만5000대 이상을 생산하는 일반도로 주행용 양산차를 기반으로 제작해야 한다. 엔진도 1.6L급 GDI 터보 엔진만 사용할 수 있다. 변속기와 엔진 등을 경주 규정에 맞춰 개선할 수 있지만 티타늄이나 마그네슘 등 특정 재료는 차량 제작에 사용할 수 없다. 그렇기에 랠리카에 적용된 기술은 향후 일반 승용차에 더 쉽게 적용할 수 있다. WRC가 단순히 속도를 겨루는 경주를 넘어 차세대 기술 경연장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에서 WRC에 참가하는 완성차 업체는 현대자동차가 유일하다. WRC 무대는 세계 159개국, 8억 명가량의 시청자에게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선뜻 참가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극한의 상황에서 경주가 펼쳐지는 탓에 각종 사고로 인한 비용이 만만치 않다. 성적이 부진하면 되레 ‘제 살 깎아 먹기’가 될 수도 있다. 독일의 완성차 업체 폭스바겐도 이런 이유로 2016년 이후 대회에 참가하지 않고 있다.

현대차도 2000년 WRC에 처음 출전했으나 2003년 시즌 도중 대회에서 철수했다. 마케팅 효과도 생각만큼 크지 않고 투자 비용 대비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당시 현대차는 고성능 기술 개발보다 브랜드 인지도 제고가 시급했다. 현대차가 WRC 무대에 다시 돌아온 것은 11년 뒤인 2014년이다. 극한 상황에서 경주를 펼치기 위해 개발한 파워트레인과 안전 기술을 양산차에 담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현대차는 WRC 복귀 첫해부터 독일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13경기 중 9경기를 완주했다. 2016년에는 독일과 스페인 대회를 비롯해 14개 대회에서 1위를 일곱 번이나 했다. 올해 대회도 시작이 좋다. 지난 2월 열린 스웨덴 대회에서 현대차 월드랠리팀의 티에리 누빌이 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팀 안드레아 미켈슨도 3위에 오르며 더블 포디움(한 팀의 두 선수가 3위 내 수상)을 달성했다. 지난 11일 끝난 멕시코 대회에서도 다니 소르도 선수가 2위에 올랐다. 제조사 부문 종합 순위에서는 2위 포드 월드랠리팀을 12점 차이로 따돌리고 1위 자리를 지켰다. 시트로엥과 도요타가 뒤를 이었다. 지난해 WRC에서는 포드가 1위를 차지했다. 포드 소속의 세바스티앙 오지에는 3차 대회까지 티에리 누빌을 4점 차이로 앞서며 개인 순위 선두를 달리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WRC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것은 기술 경쟁력을 갖췄다는 말과 같은 뜻”이라며 “연구개발한 고성능 기술을 랠리카에 적용해 검증하고 양산차 개발에도 적극 활용하는 등 선순환 구조를 확립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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