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에서는 신문 기자가 힘깨나 쓰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알음알음으로 찾아와 하소연하곤 했다. 무턱대고 전화해서 억울함을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부당하게 세금을 많이 부과받았다거나, 내용도 모르고 보증을 섰는데 집을 압류당했다거나,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는 등이었다. 피해를 본 건 자신인데 경찰 조사에선 가해자로 둔갑했다는 하소연도 기억에 남아 있다.

대출 민원도 적지 않았다. 십중팔구는 내 집 마련을 위해 1000만원을 대출받으려는데, 여의치 않다며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인사에 관한 거였다. “아무개 아들이 아무개 회사 입사시험을 봤는데 합격 여부를 알아봐 달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난감하기 짝이 없었던 기억이 새롭다. 물론 10년도 훨씬 전 얘기다.

추천만 했지 청탁하지 않았다?

‘제3자인 기자가 이럴진대 주인 없는 공기업이나 은행 임원은 인사청탁에 얼마나 시달릴까’라는 생각이 당시에도 문득문득 들었다. 채용비리로 시끄럽던 얼마 전 퇴직한 지 꽤나 된 은행 임원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당시엔 채용 관련 청탁이 훨씬 많았을 텐데.

“말도 마라. 거래처부터 국회의원, 고위 관료, 당국, 은행과 금융계 선배, 계열사 임원, 친척과 친구까지….”

-대놓고 인사청탁을 하던가.

“천만의 말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무개라고 아주 괜찮은 친구라고 한다. 추천하는 거지. 대놓고 그 친구 좀 합격시켜 달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그러면 어떻게 했나.
“난감했지. 그래서 누구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인사 실무자에게 나름대로 추린 응시생 이름을 불러준 뒤 합격자 발표 한 시간 전에 당락 여부를 알려 달라고 했다. 다행히 합격했으면 생색내면 되고, 떨어졌어도 나름 신경 써준 모양새가 되니까.”

-혹시 인사 실무자가 압력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에이. 전혀 그렇지 않다. 티끌만큼도 봐주지 말라고 했거든.”

자신은 힘 있는 사람들로부터 추천을 가장한 청탁을 받았지만, 일절 들어주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 인사 실무자도 그랬을까. 행여 압력으로 느껴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사람 따라 추천이 청탁 될 수도

추천과 청탁의 사전적 의미는 엄연히 다르다. 추천은 어떤 조건에 적합한 대상자를 천거하는 것인 반면 청탁은 (조건에 맞지 않은 사람을) 부탁하는 걸 말한다. 그런데도 현실에선 추천과 청탁의 경계가 모호하다. 12일 사의를 밝힌 최흥식 금융감독원장도 이 모호성에 발목을 잡혔다. 그는 하나금융지주 사장 시절인 2013년 친구 아들의 하나은행 입사에 관련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는 단지 추천했을 뿐이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금융계에서는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실무자는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쑤군거렸다.

결국 추천과 청탁의 차이는 누가 하느냐인 듯하다. 아무리 단순 추천이라도 힘 있는 사람이 하면 청탁으로 보는 분위기다. 금감원에 의해 채용비리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국민·하나·대구·부산·광주은행이 억울해 하지만 추천과 청탁 사이에 꼼짝없이 갇힌 모습이다.

분위기가 이리 돌아가다 보니 은행과 기업들은 채용에서 추천을 아예 멀리한다. 면접까지 외부인에게 맡기는 은행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공기업의 임원추천위원회는 ‘추천’이라는 이름으로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들을 감사 등으로 추천하고 있다. 시중에서는 이를 ‘낙하산’이라고 부르지만.

하영춘 편집국 부국장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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