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대선서 4선 확실시
70% 지지율로 압도적 선두
대항마 나발니는 후보자격 박탈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시리아 내전 '키플레이어'로
"MD 무력화 신형 핵무기 개발"
국제무대서 존재감 과시

푸틴 체제 뚜렷한 한계도
경제구조 개혁·후계자 양성 없인
푸틴 이후 러시아 정치 분열 우려

‘이변 없는’ 러시아 대통령 선거가 다시 돌아왔다.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이 3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늘 그래왔듯 이번 대선도 푸틴 대통령의 승리와 집권 4기 출범이 확실해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70% 안팎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야권 후보 7명의 예상 득표율은 모두 5% 안팎이다. 반(反)푸틴 운동의 상징이자 푸틴 대통령의 강력한 대항마로 꼽히는 알렉세이 나발니는 대선 입후보 자격이 박탈됐다. 선거일마저 푸틴 대통령의 인기 급등을 가져왔던 크림반도 병합 4주년인 3월18일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문제는 다음 대통령이 누구냐가 아니라 러시아 정치의 미래 향방”이라고 전했다.

◆‘진짜’ 선거로 보이고픈 푸틴의 속내

대선후보 중 한 명인 크세니야 솝차크는 이번 선거에 대해 “카지노에서는 늘 카지노가 이긴다. 러시아에선 푸틴이 카지노”라고 평했다. 이번 대선에는 2000년 이래 가장 많은 8명의 후보가 출마했지만 푸틴 대통령에게 대항할 수 있는 중량감 있는 인사는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결과는 정해져 있고 단지 형식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하는 선거라는 것이다. FT는 “크렘린에는 선거에 나선 7명의 경쟁자가 매우 중요하다”며 “푸틴의 선거 기획자들은 무관심한 유권자를 이끌어내 최소 70%의 투표율을 얻는 데 충분한 민주주의의 외양을 만들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나발니는 일찌감치 이번 대선을 ‘가짜 선거’로 규정하고 대선을 보이콧하자는 취지의 반정부 운동을 벌이고 있다.

결과가 정해진 마당에서 후보들은 저마다의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선거를 이용하는 양상이다. 대표적 인물이 방송인 출신 여성 후보 솝차크다. 그는 TV 방송에 나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비판하고 나발니를 옹호하는 발언으로 반푸틴 색채를 명확히 했다. 와인 사업자 출신인 보리스 티토프는 러시아 기업인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푸틴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2위를 달리는 파벨 그루디닌 공산당 후보가 그나마 주목할 만한 경쟁자로 꼽힌다. 집단농장 경영자 출신인 그루디닌은 지난해 12월 비당원 신분으로 당 후보에 깜짝 추대된 이후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그는 “야당은 아무런 정책 제안도 내놓지 못한다”는 집권당의 비난에 정면으로 맞서 민간 기업 육성과 임금 인상, 사회복지 정책 확대 등을 대안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지지율이 7~8%에 불과하고 정부가 그에 대한 노골적인 견제에 나서 푸틴 대통령에게 도전하기엔 역부족이다.

◆세계 누비는 ‘사령관’ 면모로 지지 확보

장기 집권에 따른 피로감에도 푸틴 대통령은 집권 이래 20년 가까이 60%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해왔다. 전문가들은 대내외에서 ‘강한 러시아’를 부각해온 그의 전략이 먹혀들었다고 분석한다. 정치평론가인 니콜라이 페트로프는 “우크라이나 내전, 시리아 군사작전 등 지정학적 이슈에 개입해 얻은 ‘군사령관’으로서의 명망이 지지율 고공행진을 뒷받침한다”고 평했다. 소련 붕괴 이후 경기침체와 국제적 위상 약화로 무력감을 느껴온 러시아인들에게 강대국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일 “내가 바꾸고 싶은 러시아의 역사는 소련 붕괴”라고 말해 애국심을 자극했다.
미국, 유럽 등 서방과의 긴장 관계도 푸틴 대통령이 ‘스트롱맨’ 이미지를 강조하는 데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정보기관의 미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연일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그는 지난 4일 미국을 향해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된 러시아인 13명을 “절대 인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으로 서방으로부터 받은 금융제재도 경제적으로 타격을 줬지만 푸틴 대통령의 장기 집권에는 호재로 작용했다. 그는 서방의 제재에 농산물 수입제한 등 보복 제재로 맞서고, “제재로 인한 경제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한동안 80% 이상의 지지율을 구가했다.

러시아의 영향력이 세계 구석구석에 미치면서 푸틴 대통령의 존재감은 더욱 강해지는 추세다.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는 정부군을 지원해 반군을 궁지로 몰아넣으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휴전 결의를 건너뛰고 ‘하루 5시간 인도주의 휴전’을 자체 선언하는 등 정세를 주도하고 있다. 껄끄러운 관계였던 터키와 이스라엘마저 러시아와 긴밀한 협조 관계로 돌아섰다. 유럽도 우크라이나, 시리아, 북한에 개입하는 러시아를 비판하면서도 외교 문제에서 러시아를 ‘키플레이어’로 보고 있다. 유럽은 우크라이나를 경계로 러시아와 군사적 긴장 관계에 있으면서도 막대한 양의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4선에 성공하면 ‘원조 스트롱맨’ 푸틴 대통령의 위상이 글로벌 무역전쟁을 주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장기집권의 토대를 닦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전쟁 가능국’ 개헌을 추진하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등 강대국 정상 사이에서 더욱 부각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4기 이후에도 푸틴 체제 굳건할까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푸틴 체제에 뚜렷한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경제 문제는 강한 리더십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분야다. 민간의 투자·생산 비중이 약하고 천연자원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를 개혁하는 데 푸틴식 통치가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세계은행(WB)은 중대한 개혁이 없는 한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이 수년간 정체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푸틴은 경제를 자유주의적 기술관료에게, 정치는 전 KGB 요원들에게 맡겼다”며 “그 결과 정치는 경제를 장악했고 러시아는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라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의 공고한 1인 통치가 갈수록 정치적 불안정성을 높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세 번 연임을 금하고 있는 현행 헌법을 개정하더라도 다음 임기가 끝나는 2024년에 그의 나이는 71세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도자에게 정통성을 부여하는 민주주의 메커니즘이 없다면 다음 통치자는 러시아의 분열을 가져올 수 있는 권력 투쟁에서 나올 것”이라며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에서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라고 전했다. 20년가량 러시아를 지배해온 푸틴 대통령도 러시아의 미래까지는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설 기자 solidarit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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