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 내몰리는 시급제 근로자
인건비 부담에 영업시간 줄이는 마트·음식점

시급제 근로자들 "투잡 안 뛰면 생활 어려워"
기존 직원 내보내는 판에 구직도 쉽지 않아
근로시간 단축 앞둔 중소기업도 월급 감소 걱정

< 오후 3시~5시는 ‘브레이크 타임’ > 서울 종로의 한 음식점 입구에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영업을 중단하는 ‘브레이크 타임’을 시행한다는 안내가 붙어 있다. 음식점 카페 주점 등 시간제 근로자가 많은 영업장에서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영업시간을 단축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돈가스 정식과 일본식 덮밥을 파는 서울 종로구의 한 일식집. 이곳은 올해 오후 3시부터 5시30분까지 ‘브레이크 타임’을 도입했다. 최저임금 인상 후 인건비 부담을 견디기 힘들어지자 영업시간 단축에 나선 것이다. 이 일식집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 오후 5시30분부터 9시까지만 근로시간으로 쳐 임금을 주고 있다. 작년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정모씨(28)는 “일하는 시간이 줄어 월급이 작년보다 약 20% 주는 바람에 생활비 대기도 빠듯해졌다”며 “주말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 음식점도 ‘브레이크 타임’ 도입

인건비 부담 때문에 운영시간 단축에 나서는 곳은 카페, 음식점, 주점 등 주로 외식업종이 많다. 특정시간대에 고객이 몰리는 영업 특성 때문이다. 법정 최저임금을 시급으로 주는 곳이 대다수이다 보니 올해 6470원에서 7530원으로 16.4% 오른 시간당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도 한몫했다.

이근재 한국외식업중앙회 서울시협의회장은 “점심, 저녁 모두 영업하던 고깃집이 저녁 장사만 하려고 영업시작 시간을 오후 5시로 늦추거나 오후 2시부터 6시 등 손님이 잘 오지 않는 시간대를 ‘브레이크 타임’으로 정하는 식”이라며 “이렇게 되면 해당 사업장에서 전일제로 근무하던 시급제 근로자가 반일제로 일하는 셈이 돼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이전까지는 재료 손질 등을 위해 고급 레스토랑들이 주로 브레이크 타임을 뒀지만 최저임금 인상 뒤엔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을 파는 일반 음식점도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브레이크 타임을 도입하고 있다”고 했다.

투잡 찾아 나선 시급제 근로자
최저임금이 올랐지만 월급이 줄어드는 바람에 ‘생계형 투잡’에 내몰리는 시급제 근로자가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투잡을 찾지 못해 애를 먹기 일쑤다. 마트 음식점 등이 운영시간뿐 아니라 시급 근로자까지 줄이고 있어서다. 시급 근로자가 이중고를 겪는 셈이다. 서울 성동구의 한 고깃집에서 시급제로 일하는 이모씨(66)는 “일하던 곳이 이제 밤장사만 하고 낮장사를 안 해서 낮에 잠깐 일할 다른 음식점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며 “음식점마다 직원을 내보내려 하고 새로 뽑지는 않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지난해 8월 소상공인연합회가 소상공인 532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업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상공인 10명 중 9명은 “최저임금 인상 이후 종업원 수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응답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종업원 감축 필요 유무’를 묻는 말에도 전체의 68.1%가 ‘매우 그렇다’, 24.3%가 ‘그렇다’고 답했다.

“주 52시간 땐 ‘강제 투잡’해야 할 판”

2020년 1월부터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의무 단축해야 하는 300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자 사이에선 “생계를 유지하려면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27일 국회를 통과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르면 오는 7월부터 주당 법정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된다. 50~299인 사업장은 2020년 1월부터, 5~49인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해야 한다.

주보원 삼흥열처리 대표는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일하는 우리 회사 야간조 근로자들은 저녁수당, 심야수당 등을 포함해 약 430만원을 받고 있는데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월급이 250만원대까지 내려간다”며 “투잡을 하지 않으면 현재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근로시간 단축 이후 제조업 근로자들의 평균 월급이 296만원에서 257만원으로 약 13%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도 근로시간 단축 이후 월급 감소를 걱정하는 게시글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다. A씨는 “우리 회사는 잔업과 특근이 있을 때 세후 300만원 정도 받는데 이게 없어지면 수입이 반토막 난다”며 “저녁 있는 삶도 돈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도 좋지만 돈 받고 일하는 것까지 불법으로 만들지는 말아달라”고 덧붙였다. B씨도 “최저임금으로 주 52시간 근무하면 월 기본급이 160만원가량인데 이 돈으로는 가족과 저녁 있는 삶을 누릴 수 없다”고 말했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