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무역적자 줄이기 위해
노골적으로 약달러 유도한다면
교역국도 환율개입 맞대응 가능성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추구하는 통상정책의 핵심은 국익 우선의 보호주의다. 보호주의는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출범 이후 트럼프 정부는 달러 약세를 핵심 수단으로 무역적자를 줄이는 데 노력해 왔다. 인위적인 자국 통화 평가절하는 대표적인 ‘근린궁핍화 정책(beggar-thy-neighbor policy)’으로 극단적인 보호주의 수단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을 곤경에 빠트릴 정도로 무역적자가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무역적자는 직전 연도 대비 10% 이상 늘어났다. 올해 1월에는 566억달러로 6개월 연속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달러 약세 정책이 더 이상 무역적자를 개선시킬 수 없다는 의견이 제시돼 주목된다.

특정국이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단행하는 평가절하가 효과를 거두려면 마셜-러너 조건(Marshall-Lerner condition)을 충족해야 한다. 국제무역이론에서 하나의 고전적인 내용으로 다뤄지고 있는 이 조건은 외화표시 수출수요 가격탄력성과 자국통화표시 수입수요 가격탄력성을 합한 값이 1을 넘어야 평가절하가 무역수지를 개선시킬 수 있음을 뜻한다.

마셜-러너 조건을 미국과 한국 간 교역에 적용하는 경우 미국이 달러 약세로 한국과의 무역수지를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달러 약세로 미국 상품의 원화표시 가격이 내려가 한국에 대한 수출 물량이 크게 늘어나는 대신 달러 약세로 한국 상품의 달러표시 가격이 올라가 한국으로부터의 수입 물량이 크게 줄어들어야 가능하다는 의미다.

문제는 미국의 수출입 구조가 마셜-러너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수출 상품은 비가격 경쟁력이 높기 때문에 수출 가격 변화에 민감하지 못하다. 반면 미국의 수입 상품은 소득불균형이 심한 상황에서 ‘있는 계층’은 수입품 가격 변화에 별다른 영향을 안 받고, ‘하위 계층’의 수입품은 대체할 만한 미국 제품이 적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오히려 마셜-러너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달러 약세를 계속 추구하면 초기에 나타나는 ‘J커브’ 효과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J커브 효과란 특정국의 통화 가치가 평가절하될 경우 수출입 가격 변화는 즉시 일어나나 이에 따른 수출입 물량이 변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정 시점까지는 무역수지가 더 악화된다는 이론이다.
트럼프 정부는 출범 이후 머큐리(Mercury)로 표현되는 펀더멘털 요인과 마스(Mars)로 지칭되는 정책(혹은 지정학적) 요인 간의 괴리가 우려될 정도로 달러 약세를 추구해 왔다. 미국 경기는 1990년대 후반 이후 20년 만에 ‘골디락스’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회복세가 견실하다. 지난달 이후 조정받고 있지만 증시도 활황세가 지속되고 있다.

머큐리 요인으로 달러 가치는 강세가 돼야 하는데 마스 요인으로 약세를 보인다면 교역국으로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달러 약세를 밀고 나간다면 당사국인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릴 우려가 있다. 미국 이외 교역국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 이어 유럽연합(EU), 일본 등과 같은 미국의 전통적인 우호국도 맞대응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크게 두 가지 움직임이 감지된다. 하나는 달러 약세에 대응해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환율전쟁’ 수단이다. 다른 하나는 국제결제와 외화보유에서 달러 비중을 낮추는 ‘탈(脫)달러화’ 방안이다.

트럼프 정부의 달러 약세 정책은 기로에 놓여 있다. 머큐리 요인에 해당하는 만큼 달러 강세를 용인한다면 브레턴우즈 체제가 재차 강화되면서 ‘화폐발행 차익(global seigniorage)’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이익만 앞세워 달러 약세를 고집한다면 글로벌 환율전쟁뿐만 아니라 트럼프 정부에 더 충격을 가져다줄 탈달러화 움직임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트럼프 정부는 무역적자를 축소해 놓아야 조기 레임덕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달러 약세 정책은 부작용만 노출시켜 더 밀고 나간다면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달러 약세를 더 이상 가져가지 못한다면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통한 무역적자 축소 노력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출범 2년차를 맞아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이 참가자별 이해득실이 분명히 판가름 나는 ‘노이먼-내시식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을 선택해 공세적으로 나아가는 직접적인 배경이다. 고관세와 호혜세 부과 등이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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