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진해조선소 르포

9000여명 북적이던 야드, 이젠 200여명만 남아
불꺼진 원룸촌·문닫은 상가… 쇠락한 러스트벨트 보는 듯

살아남은 STX조선해양도 추가 구조조정 어쩌나 근심

8일 정부의 법정관리 방침이 발표된 성동조선해양 통영조선소. 일감이 없어 선박을 건조하는 야드가 텅 비어 있다. 대형 크레인은 멈춰섰고 근로자도 찾아볼 수 없다. 박재원 기자

“성동조선이 파산하면 통영 지역 경제도 파산합니다.”

8일 법정관리 방침이 결정된 경남 통영의 성동조선해양 조선소 정문에는 이 같은 글귀가 적힌 비에 젖은 현수막이 바람에 흔들렸다.

공장 외벽에 새긴 ‘중형선 세계 1위 조선소’라는 문구가 무색하게 188만6800㎡(약 57만 평)에 달하는 야드는 황량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철판을 옮기던 골리앗 크레인은 멈춰섰고 직원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2009년 6500여 명의 협력사 직원을 포함해 9000명이 넘는 인원이 북적이던 곳이다. 이날 출근한 직원은 200명 남짓에 불과했다. 약 1000명의 직원은 강제휴직 상태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11월부터 일감이 완전히 끊겼고 올 1월부터 새로운 선박을 건조할 계획이었지만 선주 측에서 회사 상황이 매듭지어질 때까지 생산을 연기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두 달째 대기 중”이라고 말했다. 성동조선 ‘1호 선박’을 지었던 플로팅 도크는 이미 121억원을 받고 국내 중소업체에 팔렸다.

직원들은 이날 정부 발표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노조 관계자는 “대부분 노조원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지만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조에서는 수리조선이나 블록 공장화는 임시방편일 뿐 회사를 살리기 위한 대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퇴근시간인 오후 5시가 넘어서면서 하루 한 차례 운행하는 통근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직원들이 조선소를 빠져나왔다. 한 직원은 “일감이 넘칠 때 한 시간마다 운행하던 통근버스가 이제는 이걸 놓치면 퇴근이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털어놨다.
조선소 상주 인력이 급격히 줄면서 주변 지역 경기도 싸늘히 식은 지 오래다. 직원들이 드나들던 병원과 식당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조선소 상주 인력이 급격히 줄면서 주변 지역은 이미 파산한 도시처럼 변했다. 미국의 자동차산업이 몰락하며 텅 빈 주택가에 깨진 창문이 즐비했던 ‘러스트벨트’를 대표하는 미국 디트로이트 시내를 보는 듯했다. SPP조선, 신아조선 등 이미 청산된 소형 조선소 이외에 성동조선까지 법정관리행이 확정되면서 통영 지역 경제는 더욱 암울해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날 조건부 회생 소식이 전해진 STX조선해양의 진해조선소도 침울한 분위기는 마찬가지였다. 성동조선보다는 나은 결정이지만 작업자들의 얼굴에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은 없었다.

전날 밤부터 내린 비로 야외 작업은 전면 중단됐다. 350여 명의 인력이 출근해 선체 블록을 제작하기 위한 작업에 나섰지만 직원들의 관심은 회사 존속의 전제조건에 쏠렸다. 다음달 9일까지 고정비 대폭 감축과 사업 재편 방안에 대한 노사확약서를 제출해야 한다.

확약서가 제출되지 않으면 법정관리에 들어가야 한다. 이를 피하려면 1300명 수준인 인력의 40%, 약 520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나야 한다. 노조 관계자는 “이미 기업회생 절차를 거치면서 과거 정규직 인원의 40% 이상이 현장을 떠났고 회사와 채권단도 더는 인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며 반발했다.

2013년 2600명이던 사무·기술 직원은 다섯 차례 희망퇴직을 거치면서 630명까지 줄었다. 같은 기간 생산직원은 1100명에서 695명으로 감소했다. 총 직원이 3700명에서 1325명으로 줄었는데 또다시 40%를 내보내야 한다. 공두평 총무보안팀장은 “더 높은 수준의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직원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이 크다”고 말했다.

통영=박재원/창원=김해연 기자 ha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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