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못 뺏겨" 반발에 학과 통폐합, 학제간 융·복합 교육 잇단 무산… 경쟁력 추락

2016년 ‘알파고 쇼크’ 이후 이공계 최고 인기 학과로 떠오른 서울대 컴퓨터공학부는 정원이 55명에 불과하다. 컴퓨터사이언스(CS) 전공자가 600여 명에 달하는 미국 스탠퍼드대 등 해외 유수의 대학은 물론 연세대(118명), 고려대(115명) 같은 국내 경쟁 대학에 비해서도 턱없이 적다. 그 배경에는 20여년 전부터 학생 정원을 놓고 교수 사회에서 벌어진 ‘기득권 싸움’이 있다. 2000년 공대 컴퓨터공학과와 자연대 전산과학과가 공대 컴퓨터공학부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자연대 교수들이 “공대에 정원을 뺏길 수 없다”며 강력 반발한 것.

두 학과를 합쳐 120명이었어야 할 컴퓨터공학부 정원은 자연대 측이 “학생 정원을 내놓을 수 없다”고 버텨 90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나마 90명이던 정원마저도 ‘교육 내실화’ ‘대학원 강화’를 목적으로 이뤄진 서울대의 학부 정원 감축 정책에 따라 차츰 줄어 2005년 55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매년 전공 희망자가 넘쳐나고, 증원의 목소리가 학교 안팎에서 나오지만 정원은 요지부동이다. 마치 20년 전처럼 공대 내 어느 학과도 정원을 내놓지 않는 탓이다.

◆“학생 없어도 전공 못 뺏겨”

교수 집단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기득권 중 하나로 꼽힌다. 학자가 갖는 권위와 교수 사회의 폐쇄성이 맞물려 대학은 ‘혁신의 무풍지대’로 남았다.

학과 구조조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학령 인구 감소로 구조조정이 시급한데도 전공에 대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교수들 반발에 좌절되기 일쑤다. 지방의 한 사립대학 기획처장은 “몇 년 전 학과 통폐합 얘기를 꺼냈다가 교수들이 단체로 들고일어났다”며 “해당 학과는 여전히 몇 년째 지원자 미달 사태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교수들의 무조건적인 반발은 학내 갈등으로 이어진다. 대학이 구조조정안을 발표하면 교수회가 성명서로 맞불을 놓고, 학생들은 본관 점거로 대응하는 식이다. 기싸움에 지쳐 결국 구조조정을 포기한 대학도 많다. 지난해 국민대, 동덕여대, 서울여대는 학과 통폐합을 검토하다가 교수 등의 반발로 결국 철회했다.

산업·사회구조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데 대학이 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는 지적이다. 이현청 한양대 교육학과 석좌교수는 “전공을 지키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대학 구조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사회의 변화하는 인재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도 대학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융·복합 교육 중요하다더니…

한국 대학에선 학제 간 융·복합 교육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연세대는 다양한 전공 교수들이 협력해 강의하는 ‘팀티칭’ 도입을 학교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지만 이런 과목은 연간 두세 개 개설에 그치고 있다. 연세대 고위 관계자는 “일부 교수가 강의시수(매학기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수업시간) 대비 수업을 더 해야 한다면서 반대해 원안처럼 진행하기 어려웠다”며 “몇몇 교수는 ‘왜 이런 걸 귀찮게 해야 하느냐’고 반발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서울대는 2008년부터 교수 한 명이 두 개 이상 단과대에 소속돼 강의할 수 있는 ‘겸무교수제’를 시행 중이지만 10년이 되도록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컴퓨터공학부만 해도 교수 34명 가운데 겸무교수는 한 명뿐이다.

이 같은 현실은 기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2~2016년 한국에서 나온 인공지능(AI) 관련 논문 수는 6598건으로 중국(4만8205건), 미국(2만9750건), 일본(1만3271건), 인도(1만1978건), 영국(1만1745건) 등은 물론 우리보다 인구도 적고 기술강국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스페인(7482건)에도 뒤진다. 게다가 이 분야 논문 1건당 인용 횟수는 세계 평균보다 12% 적다. 세계 평균을 100회로 했을 때 한국은 88회에 그친다는 의미다.

지난해 AI 분야 논문을 가장 많이 생산한 100개 대학 중 한국 대학은 KAIST(34위)와 서울대(69위) 두 곳뿐이다. 인력도 현저히 부족하다. 국내 이동통신업계 전체 AI 인력을 합쳐도 미국 아마존(4000명)의 8분의 1이 되지 않는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한국 교수들은 아직도 학제 간 융·복합을 ‘우리 과(科) 자리 뺏기’로 생각해 다른 과에 수업을 개설한다고 하면 반발한다”며 “기술혁신의 걸림돌은 학문보다 기득권에 안주하는 학계 문화”라고 말했다.

성수영/황정환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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