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심리학

스티븐 파인먼 지음 / 이재경 옮김
반니 / 240쪽│1만4500원

2000년 한 중년 남성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외곽 도로를 운전하다 비비원숭이 한 마리를 치어 죽였다. 남자는 가던 길을 계속 갔고, 사흘 뒤 같은 길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그의 차를 알아본 비비원숭이 한 마리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질렀다. 바위틈에 숨어 있던 비비원숭이 무리가 일제히 튀어나와 자동차에 돌멩이 세례를 퍼부었다. 운전자는 혼비백산해 간신히 빠져 나왔다.

스티븐 파인먼 영국 배스대 명예교수가 복수를 주제로 쓴 《복수의 심리학》(원제: Revenge)은 영화 ‘혹성 탈출’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비비 매복 습격 사건’으로 시작한다. 파인먼 교수는 “차를 발견하기 전부터 비비 무리의 마음에 복수의 욕구가 있었는지는 짐작만 가능하다”며 “다만 인간과 유전적으로 그리 멀지 않은 동물 종인 이들의 행동에 인간 복수의 모든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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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영장류와 원시 수렵채집인의 복수 행태부터 오늘날의 ‘리벤지 포르노’(보복성 음란물)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개인과 가족, 직장, 사회, 국가 사이에서 행해진 복수의 다양한 양상과 이면의 심리를 살펴본다. 고대 그리스 비극부터 현대 슈퍼히어로물까지 복수가 인간의 상상력에 행사하는 원초적 지배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야기들도 들려준다. 이를 통해 복수 충동에 담긴 인간의 본질적인 심리를 파고들며 책의 부제인 ‘우리가 왜 용서보다 복수에 열광하는가’란 질문에 답한다.

저자에 따르면 복수 충동은 인간의 욕구 중 가장 원초적이고 일차적인 욕구다. ‘인간 영장류’의 생물사회적 기질에 섞여서 전수되고 슬픔, 비탄, 굴욕감, 분노 같은 격한 감정으로 촉발되는 원초적 본능이다. 복수의 감정은 먼 옛날부터 인간 사회에 정서적 유전자로 대를 이어 전해졌다.

‘복수는 헛된 것’ ‘복수한다고 이미 일어난 피해를 되돌릴 수는 없다’는 견해에 대해 저자는 “중요한 문제를 놓치고 있다”고 말한다. 살해당한 가족을 둔 사람은 죽은 사람을 되살릴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인자를 편안히 살게 내버려둘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응징 욕구는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박고 있고, 실제로 도덕과 이성이 만든 제약들을 우회하는 길을 끝없이 찾기 마련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복수는 해악으로 치부되지만 그렇다고 백해무익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복수는 때로 사회적 부정을 노출시키고 바로잡는 순기능도 한다. 불평등한 억압관계에선 중요한 저항의 경로가 된다. 우려하는 것은 통제 불능의 복수다. 사법제도와 도덕률, 종교 교리들이 이를 막기 위해 탄생하고 발전했다. 증오를 누르는 자제력과 신중함을 드높이는 문화도 생겨났다. 종교마다 용서를 최고 미덕으로 꼽는다. 범죄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고 그 과정에서 본인도 고통과 분노를 극복한 경우 ‘놀랍고 아름다운 사연’으로 대서특필되기도 한다.

저자는 하지만 용서를 강조하는 윤리에는 함정이 있다고 지적한다. 피해자에게 ‘나는 왜 용서하지 못할까’라는 불필요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진심 어린 반성이 없는 상태에서 용서하는 ‘무조건적 용서’는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뿐이며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정신분석가 앨리스 밀러를 인용해 “억지로 용서하는 건 노력 낭비”이며 “그 노력이 오히려 피해자를 진실과 격리시킨다”고 말한다.

저자는 수많은 사례를 통해 복수를 우리 생활과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낸 ‘복수의 진공 상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우며, 우리 문화가 무조건적인 용서와 인내를 묵시적으로 강요함으로써 2차 피해를 촉발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게 한다. 최근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는 원통한 마음을 친사회적 활동으로 풀면서 용서와 복수를 모두 비켜 가는 피해자들을 소개한다. 본인이 당한 학대를 유발하는 사회적 인자를 없애고 사회 여건을 바꾸는 일에 참여하는 ‘도의상 용서하지 않는 사람(moral unforgiver)’들이다.

2016년 11월 영국에선 수백 명의 프로축구 선수가 어린 시절 코치에게 반복적으로 성적 학대를 당한 경험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미투 운동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인 폴 스튜어트가 첫 주자였다. 그는 “수치심 때문에, 발설하면 가족을 죽이겠다는 코치의 협박 때문에 40년 동안이나 그 트라우마를 꼭꼭 묻어뒀다”고 저자에게 털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가족과 커리어, 성공이 잊는 방법이었습니다. 복수할 생각이 한 번도 없었다면 거짓말입니다. 지금의 내 고백은 복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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