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정기구독' 우리가 원조"
하버드 MBA생의 발상 전환
월 10弗로 시장 판을 바꾸다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우리는 화장품을 파는 회사가 아닙니다. 소비자가 화장품을 싸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온라인 판매 방식을 바꾼 회사입니다.”

카티아 뷰챔프 버치박스(Birchbox)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의 회사를 한마디로 이렇게 설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에 설립된 버치박스는 기존 온라인 화장품 시장에 구독 서비스를 접목해 화장품 샘플 정기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변덕스러운 소비자 취향을 이용해 월 10달러만 내면 피부 및 헤어 제품 샘플을 매달 받아볼 수 있도록 했다. 고객의 관심이 ‘무엇을 사고 싶은지’에서 ‘어떻게 사고 싶은지’로 바뀌고 있는 것을 겨냥한 것이다.

상품이 아닌 경험을 팔다

버치박스는 소셜미디어를 고객 요구에 맞춰 소통하는 기회로 삼았다. 메이크업 노하우, 헤어 스타일링 동영상 등 소비자가 원하는 동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자사 홈페이지나 유튜브에 올려 버치박스 웹페이지 방문자 수를 두 배 이상 늘렸다. 버치박스 웹페이지에 올라온 마스카라 사용기는 3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유튜브의 뷰티스타로 유명한 잉그리드 닐슨이 버치박스에 대한 사용 후기를 남긴 이후 수천 명이 잇따라 사용 후기를 남기며 버치박스 인기는 급물살을 탔다.

뷰챔프 CEO가 그린 설계도는 이렇다. 1. 메이크업 정보를 얻기 위해 버치박스 플랫폼(웹페이지 또는 앱)을 방문한다. 2. 이들이 화장품 샘플 구독(정기배송) 서비스를 이용한다. 3. 마음에 드는 제품은 버치박스 플랫폼에서 완제품으로 구매한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샘플 구독자의 50%가 완제품 구매로 이어졌다. 회사 수익의 35%는 온라인 완제품 판매에서 나오고 있다.

2010년 600명의 구독자로 시작한 버치박스는 현재 6개국(미국·영국·프랑스·스페인·벨기에·아일랜드) 100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800개 화장품 브랜드를 버치박스 플랫폼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총 고객 수는 400만 명이 넘는다. 월 20달러에 남성용 샘플을 보내주는 ‘버치박스맨’도 출시했다.

버치박스는 소비자들이 화장품을 찾는 재미를 경험하도록 오프라인 매장도 운영 중이다. 2014년 7월 본사가 있는 뉴욕에 매장을 만들었으며, 지난해 봄 프랑스 파리에 두 번째 매장을 열었다. 고객들은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구할 수 있는 화장품 샘플로 자신만의 버치박스를 만들거나 온라인 예약을 통해 헤어 메이크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버치박스는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뽑은 올해 가장 인기 있는 5대 제품 구독 서비스에 이름을 올렸다. 아마존 서브스크라이브&세이브, 달러쉐이브클럽, 입시, 블루에이프런도 포함됐다.
또 다른 ‘성공 열쇠’는 콜드메일

뷰챔프 CEO는 창업이나 화장품업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텍사스주 엘패소에서 자란 그는 뉴욕 명문 바사르대를 졸업한 뒤 투자은행과 부동산업계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산업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 이 열망으로 하버드경영대학원(MBA)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기업가 정신을 키우고 버치박스를 함께 만든 헤일리 바나, 몰리 첸 등 창업 동료들을 만났다.

뷰챔프 CEO는 버치박스 성공비결의 하나로 ‘콜드메일(cold-email)’ 전략을 꼽았다. 잠재적인 고객에게 요청하지 않은 메일을 보내는 것이다. 그는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를 비롯해 대형 화장품회사 임원 등 어려운 상대에게 콜드메일을 효과적으로 보낸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다. 대부분 메일은 묵살됐지만 일부는 좋은 피드백을 받으며 사업가로서 더욱 단단해지고 사업 기회도 얻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콜드메일은 때론 블랙홀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다. 하지만 일부는 실제 미팅으로, 계약으로, 대기업과의 파트너십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콜드메일은 자칫 스팸메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때문에 전략이 필요하다. 뷰챔프 CEO는 △‘안녕하세요’ 대신 눈길을 사로잡는 주제문으로 시작하고 △스크롤하지 않고 읽을 수 있도록 짧게 쓰고 △‘5분만 시간을 내어 충고해 달라’ 같은 수락하기 쉬운 요청을 제안하고 △내용이 긴 파일은 첨부하지 말 것을 제시했다.

35세인 뷰챔프 CEO는 ‘밀레니얼 세대’의 전형이다. 그는 “우리 세대는 현상유지를 거부한다. 성 평등이 되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것이 이뤄지도록 한다”고 강조한다. 쌍둥이 아들과 남편을 둔 그는 일과 생활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 문화를 강조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남자와 여자 모두 변화에 참여하고 이를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화장품 샘플 구독 시장 경쟁 심화

샘플 구독 서비스의 ‘원조’인 버치박스가 2010년 등장한 이후 100여 개 유사 서비스가 나왔다. 이 중 입시는 버치박스를 압도할 정도다. 시장조사업체 세컨드메저에 따르면 2017년 입시의 시장점유율(68%)은 버치박스(32%)를 크게 앞질렀다. 버치박스가 화장품에 호기심이 있는 일반인을 겨냥한 반면, 입시가 좀 더 화장품 마니아층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대기업들도 유사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아마존은 유료 회원인 프라임고객 대상 화장품 음식료 영양제 등의 샘플을 배송하는 ‘아마존프라임샘플’을 조만간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2달러만 내면 무료배송으로 3~10일 만에 샘플을 받아볼 수 있다.

화장품 샘플 구독 시장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은 버치박스엔 위기이자 기회로 보인다. 버치박스는 스타트업 초기 이익보단 매출 성장에 중점을 뒀다. 실적 고전을 겪으면서 2016년 직원의 30%를 해고하고, 마케팅 물류 등에서 수천만달러의 비용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 결과 지난해부터 이익 전환에 성공했다.

회사의 이익 전환과 채권 상환 상황이 맞물리면서 인수합병(M&A)설도 솔솔 나오고 있다. 버치박스는 2010년 설립 이후 벤처투자자들로부터 8000만달러 이상의 자금을 조달했으며 이 중 상당수 채권이 올해 만기가 도래한다. 정보기술(IT) 전문지 리코드는 디지털 경제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월마트의 버치박스 인수 가능성을 보도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디지털경제 시대에 사람과 기업, 거버넌스가 즐겁게 어우러지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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