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통상 한국'

미국 무역 압박 거센데…손 놓은 통상 관련 부처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맨 왼쪽)이 지난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긴급 대외통상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맨 오른쪽)의 발언을 듣고 있다. 미국 상무부와 의회, 주정부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현지에 머물던 김 본부장은 급하게 귀국했다가 6일 다시 출국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탁기 철강 등 한국의 주력 수출품에 대한 무역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한국의 대응은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미국에 급파해 수입규제 조치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전략도, 전문가도, 컨트롤타워도 없는 ‘3무(無) 통상외교’”란 지적이 나온다.

(1) 전략 부재로 통상압박에 속수무책

지난달 중순 미국 상무부가 철강 수입 규제안을 내놓자 청와대는 “안보와 통상을 분리하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는 당당하고 결연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통상 관련 부처들의 후속 조치는 나오지 않았다. 보름여가 지난 뒤인 이달 5일에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부랴부랴 대외통상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미국에 우리 입장을 적극 설명하겠다”는 것 말고는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세계 최대 무역동맹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출범이 다시 가속화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정부는 무대응이다. 일본이 주도하는 TPP는 8일 11개국이 칠레에서 협정문에 공식 서명하고 출범한다. TPP 철회 방침을 밝힌 트럼프 대통령도 다시 TPP 가입을 타진 중이다.

(2) 컨트롤타워 없이 김현종 '개인기'에 의존

미국은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 등 정부 핵심 인사들이 대거 나서 통상압박을 주도하는 데 비해 한국은 차관급 본부장의 ‘1인 플레이’에 의존하고 있다.

김 본부장은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3일까지 미국을 방문해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로스 장관 등을 만났다. 한국에 많은 농축산물을 수출하는 네브래스카주와 텍사스주 지사를 면담하고, 육류협회 곡물협회 축산협회 대표들도 만났다.

김 본부장은 미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나와 통상전문 변호사로 활동했기 때문에 미국에 많은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통상현안을 범부처 차원에서 대응하지 않고 김 본부장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것에 비판적 시각이 많다. 김 본부장의 의견을 지지하던 콘 위원장이 6일 사임 의사를 밝힌 것도 악재다. 그는 김 본부장과 막역한 사이로 ‘핫라인’ 역할을 해왔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한국은 통상을 특정 부처가 처리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 본부장의 역량만으로 처리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통상외교의 한 축인 외교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정 교수는 “지금이라도 청와대가 적극 나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 통상 실무자 길어야 3년…전문가 못 키워

전문가들은 통상기능이 외교부와 산업부를 왔다 갔다 하며 통상전문가를 키우지 못한 ‘고질병’으로 인한 폐해가 이번에 여실히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한 통상 전문가는 “미국의 통상 전담조직인 미무역대표부(USTR)는 대통령 직속으로 인원만 300명이고 이 중에는 민간 로펌 등에서 활동하던 전문가도 다수 있다”며 “통상 쪽 일을 하다 순환 보직으로 산업 에너지 등의 분야로 이동하는 한국 공무원들과는 애초부터 게임이 안 된다”고 했다.

이어 “한국 부처 특성상 통상법 변호사 등 민간 전문가를 채용하기 힘든 구조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산업부 관계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 나가 보면 10년 전 한·미 FTA 협상 당시 실무 주역들이 아직도 협상 주체로 나오고 있다”며 “길어야 3~4년인 우리 실무자들과 기량에서 차이가 난다”고 했다.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A씨는 “박근혜 정부에서 통상교섭본부를 해체한 게 전문가를 키우지 못한 원인 중 하나”라며 “과거 장관급이던 통상교섭본부장이 지금은 차관급으로 낮아졌는데 이를 청와대 직속으로 옮기고 장관급으로 격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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