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습득 위해 메이저와 합작투자
공기업 자원개발 역량 활용하고
석유·가스 개발 유기적 협력 절실"

이승훈 <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

한국 경제는 국제유가가 오를 때마다 생산원가와 상품수지 양면에서 압박을 받으며 몸살을 앓는다. 그러나 유가가 오르더라도 일정량의 석유는 반드시 써야 한다. 일부만이라도 직접 생산한 현물로 들여오면 비싼 값을 치르는 부담을 한결 덜 수 있다.

그런데 석유자원의 탐사개발 분야는 석유메이저들의 독무대다. 이들은 각각 탐사개발의 상류, 석유정제 및 가스액화의 중류, 소매판매와 각종 석유화학공업 등 하류의 전 부문에 걸쳐 포진하고 있다. 경쟁력이 약한 우리는 이 ‘공룡’들과 정면충돌하기보다 이들의 사업에 파트너로 참여하는 형태로 출발하는 것이 옳다.

수출 제조업과 달리 해외자원개발은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채 벌이는 사업이다. 당장 반도체나 자동차 수출과 같은 성과를 기대하면 안 된다. 장기 목표는 수익성 제고이지만, 지금은 자원개발기업 자체의 이익보다는 국가 차원에서 수입하는 것보다 개발 도입의 이익이 더 크기만 하면 된다.

저유가가 영구적이라면 석유자원을 그냥 싸게 사오는 것이 더 낫다. 그런데 유가는 조만간 오른다. 역량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가 부담스러운 경쟁에 뛰어드는 이유는 순전히 고유가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유전·가스전을 확보해두면 고유가가 덮칠 때 비싼 값을 치르고 사오는 대신 직접 개발한 현물을 도입할 수 있다.

저유가가 지속된 최근 한국석유공사는 큰 손실을 기록했는데 석유메이저들도 상류사업에서는 더 큰 손실을 입었다. 원래 상류부문은 고유가에 활황을 누리고 저유가에 침체하는 데 비해 하류사업은 저유가에 활황을 맞는다. 우리나라도 석유공사가 엄청난 손실로 비틀거리던 지난 몇 년 동안 정유업계를 비롯한 하류사업은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렸다. 석유공사는 파산지경에 내몰렸지만 메이저들은 무사했는데 그 까닭은 메이저들에는 석유공사에는 없는 하류부문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시각은 석유공사 문제를 정책실패와 경영실패로만 몰아갔고, 이에 주눅이 든 정부는 해외자원개발 투자를 아예 중지하다시피 했다. 반면 국제 자원시장은 유가 폭락으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석유기업들이 헐값에 유전과 가스전을 내놓음으로써 절호의 투자기회를 맞았다. 그런데 국내 정치권은 자구책을 요구하면서 석유공사가 어렵게 마련한 고유가 대비 유전조차 헐값에 매각하도록 강요했으니 딱한 일이다.

새로운 해외 석유자원개발은 어떻게 출발해야 할까. 첫째, 사업의 수익성과 우리의 역량 개발을 위해 메이저들과의 합작투자가 필수적인데, 기술을 제대로 습득하려면 가급적 우리 지분은 30% 이상이 바람직하다. 우리의 큰 구매력으로 구입계약을 병행하면 몇몇 메이저들과 이 수준의 파트너 관계는 충분히 맺을 수 있다.

둘째, 석유와 가스를 분리한 현 체제는 석유자원 조달을 개발도입이 아니라 수입에 의존하던 시대의 유물로, 석유와 가스가 뒤섞여 매장된 채굴현장과 모순된다. 두 부문을 통합하고 고유가 대비의 헤징(위험회피)이 가능하도록 상·하류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새로운 개발체제가 필요하다.

셋째, 현재 공기업의 자원개발에 대한 규제가 지나치다. 해외 자원개발은 투자 규모는 방대한데 경쟁력은 부족해 위험이 크므로 당분간 민간부문이 홀로 나서기 어렵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가 그동안 비축한 자원개발 역량은 국내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이들의 역량을 옥죄지 말고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넷째, 트레이딩(교역) 역량과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개발한 자원은 그대로 국내에 도입해야 한다는 제한은 지나치다. 같은 물량이라도 스와핑(교환)을 통하면 더 싸게 도입하므로 자원개발은 반드시 트레이딩을 동반해야 한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실수를 반복한다. 정부는 지혜로운 자원개발 전략 수립에 만전을 기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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