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작업 등 공모 발행절차 복잡
사모 발행은 유가증권 인정 못받아
'큰손' 국내 기관들이 투자 외면

작년 이후 발행액 2000억 불과
마켓인사이트 3월5일 오전 6시11분

올 들어 국내 회사채 발행시장이 달아오르고 있지만 외국 기업들에는 ‘그림의 떡’이다. 채권시장 ‘큰손’인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외국 기업이 국내에서 발행하는 회사채에 투자하는 데 걸림돌이 있어서다. 자금조달을 원하는 외국 기업과 투자를 원하는 국내 기관이 많지만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서 채권 발행 길 막힌 외국 기업

지난해 국내에서 외국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사모 포함) 규모는 2000억원에 불과했다. 전체 회사채 발행액 63조9454억원(주식 관련 채권 포함)의 0.3% 수준이다.

올 들어 8조5480억원(2월 말 기준)어치 회사채가 발행된 가운데 국내 시장의 문을 두드린 외국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외국 기업들의 발행금액이 가장 많았던 2015년(5450억원)조차 전체 회사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9%에 그쳤다.

외국 기업의 채권 발행이 활발한 대만이나 홍콩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2016년 기준 대만에서 발행된 외국 기업 채권 규모는 100조4000억원(발행잔액 기준)으로 전체 채권시장의 23.6%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홍콩 채권시장에서 외국 기업(256조8000억원)의 비중은 49.0%에 달했다.

한국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외국 기업이 많지만 금융당국의 엄격한 규제에 대부분 발행을 포기하고 있다는 게 투자은행(IB) 업계 전언이다. 외국 기업들이 국내에서 공모로 채권을 발행하기 위해서는 증권신고서를 비롯한 관련 서류 대부분을 한글로 준비해야 한다. 이 같은 불편함 때문에 외국 기업 대부분이 사모 발행을 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사모 발행이 사실상 봉쇄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국 기업이 영문 서류를 제출하고 간소화된 심사절차를 거쳐 전문 기관들을 상대로 회사채 수요를 모을 수 있도록 한 적격기관투자가(QIB) 제도가 2012년 도입됐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외국 기업이 국내에서 사모로 발행한 채권을 기관들이 사들이면 이를 회계상 유가증권이 아니라 기업 대출로 인정하고 있다. 채권 투자가 기업 대출로 잡히면 충당금 적립이 불가피하다. 투자에 뛰어드는 국내 기관들이 거의 없는 이유다.

특히 장기 회사채 매입이 급한 보험사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들은 2021년 새 국제 보험회계기준(IFRS17)이 도입돼 보험 부채를 시가 평가하면 부채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수익률이 높은 장기 채권을 사들여 자산 만기를 늘려야 한다. 하지만 국내 민간기업이 지난해 공모로 발행한 만기 10년 이상 채권은 총 3700억원어치에 불과한 만큼 장기 회사채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대만은 규제 풀고 ‘급성장’

금융당국이 외국 기업의 사모 회사채를 유가증권으로 인정한다는 유권해석만 내려줘도 한국시장에 발을 들이는 외국 기업이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 문턱이 낮아지면 한국에서 채권 발행에 나설 외국 기업이 30~50곳은 된다”고 설명했다.

대만은 포모사본드(외국 기업이 대만에서 발행하는 외화채권) 시장을 조성한 2006년만 해도 외국 기업의 채권 발행이 전무했다. 2013년 위안화 채권 발행을 허용하고 2014년 현지 보험사의 해외투자 한도를 45%로 제한하는 규제를 없앤 이후 시장이 급성장했다. 2013년 18억달러에 불과했던 포모사본드 시장 규모는 2016년 495억달러로 불어났다.

IB 업계 관계자는 “대만에선 애플 인텔 등 글로벌 기업들이 줄줄이 채권시장에 발을 들이고 있다”며 “한국도 외국 우량기업들의 장기 회사채가 나오면 기관들이 공격적으로 담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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