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밭담은 제주도 밭농사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돌밭을 일군 개척정신, 밭담을 쌓아 농경에 활용하는 삶의 지혜가 녹아 있다.

층층이 쌓여 있는 돌은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다. 외롭지 않게 서로 엉겨 붙어 얼마나 지난한 세월을 견뎌 왔을까. 캔버스에 담긴 하나의 풍경으로서 검고 거친 현무암이 서 있는 듯했다. 한반도 최남단에 있는 화산섬, 제주도에는 ‘흑룡만리(黑龍萬里)’가 있다. 이름에서부터 위용이 느껴지는 ‘흑룡만리’의 정체는 들녘을 가득 채운 제주 밭담이다. 2만2000㎞가 넘는 긴 길이가 흑룡의 검은색 외양을 닮았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검은색 현무암 밭담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만 리가 된 사연이다.

제주 밭담은 ‘힐링의 제주’를 이해하는 새로운 미감이다. 제주공항에서 목적지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스쳐지나버린 그 풍경 속에 진흙 속 진주와 같은 존재가 숨어 있다. 제주시 서귀포 시흥리 두산봉에 올랐다. 산과 바람과 하늘, 그리고 드넓게 펼쳐진 밭이 있는 풍경이다. 동틀 무렵 안개에 휩싸인 땅은 바다까지 뻗어 있다. 흑색과 흙색이 조화를 이루고, 곡선 형태로 구불구불 이어진 모습이다. 밭담과 작물이 한데 어우러져 섬 전체를 수놓은 농업 경관이 으뜸으로 꼽힌다.

특이한 것은 크고 작은 밭은 여러 개인데, 들어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돌로 쌓은 밭의 담, 밭담은 일종의 경계선 역할을 한다. 농사를 지으려면 각각의 밭에는 기계(소나 말)나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길이 필요하고, 안쪽에 있는 밭담은 길이 없는 맹지에 해당한다. 그런데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은 “농사짓는 사람에게 맹지는 없다”고 했다. 무슨 말일까.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밭담 모서리에 담을 허물어 길을 터준 흔적이 있다. 또 도로에 인접한 밭에서 안쪽 밭으로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밭담을 두 줄로 쌓은 게 ‘잣담(잣길)’이다. 보통은 ‘밭두렁 논두렁’이 있지만 제주도는 두렁 자체를 만들 수 있는 흙이 없어 돌을 양쪽으로 쌓아 길을 냈다. 백승석 한국농어촌공사 과장은 “오늘날은 길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사거나 보상을 하지만 전통적으로는 잣길을 만들어 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줬다”고 했다. 팍팍하지 않았던 인심, 즉 마음의 여유가 만들어낸 배려의 길이다.
밭담은 쌓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한 줄로 쌓은 담이자 가장 대표적인 ‘외담’, 아랫부분에는 작은 돌을, 윗부분에 큰 돌을 올려놓은 ‘잡굽담’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큰 돌을 아래에 놓는 것과 반대로 쌓는 잡굽담은 개간한 농지에서 연접한 땅과의 높낮이 때문에 생기는 토양의 유실을 방지하려는 지혜다. 또 밭에 쌓으면 밭담, 집 울타리는 울담, 산에 쌓으면 산담이다. 마을 출입구엔 올레담을 쌓았고 여기서 올레길이 나왔다.

제주도의 돌과 돌로 쌓은 담은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정체성이다. 제주도에서 24대째 농사를 짓는 부석희 씨는 유기농 당근을 주로 재배한다. 그는 “농사짓는 사람은 땅을 갖는 욕심은 있어도 파는 데는 욕심이 없다”며 “제주의 보물인 돌의 가치를 알고 잘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 밭담은 가족 단위로 자기 밭을 개간하면서 쌓아온 형태다. 천년에 걸쳐 개인과 가족의 소규모 공동체가 오직 돌로 한 땀 한 땀 쌓아 올린 삶의 궤적이다. 소수의 지주가 다수의 종에게 시켜 만든 착취의 문화가 아니라 민초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문화로서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제주=이현주 한경머니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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