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각계각층으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선언의 파장이 확대되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형법 제307조 1항은 허위 사실뿐 아니라 사실을 알린 경우에도 최대 2년 징역이나 500만원 벌금형에 처하도록 한다. 폭로가 사실이어도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처벌 대상이다. 미투 운동에 참여해 특정 인사로부터 성범죄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폭로자들이 ‘역고소’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이에 여성운동계 등을 중심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국민청원에는 2일 기준 4만 명 이상이 ‘동의’를 누른 상태다. 논란이 커지자 정치권에서도 법개정에 나서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젠더폭력대책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을 맡은 남인순 의원은 간담회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면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당하는 것에 대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의원들이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민주평화당 역시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삭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면 폐지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표현의 자유 못지않게 개인의 인격권 및 사생활의 자유 역시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악성 댓글이 넘치는 상황에서 해당 법이 개인 정보에 대한 마지막 보호 수단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정수경 변호사로부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에 대한 찬반 의견을 들어봤다.

[찬성] '미투' 운동 참여 성범죄 피해자들... 가해자의 역공격 위험에 노출시켜
미국·독일·프랑스 등 선진국들도 형사처벌 규정 없어


최근 ‘미투 운동’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 제1항,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특례법 제70조 제1항)를 폐지해야 할 필요성이 확인되고 있다. 성폭력 또는 성추행 피해자가 명예훼손죄를 이용한 가해자의 역공격 위험에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 죄가 권력자들의 총애를 받았을 때도 폐지 목소리가 높았다.

‘진실’한 사실을 발설하는 경우에도 명예 보호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형사처벌의 방법으로 제한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상당수 선진국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형사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유엔 자유권 규약위원회도 2015년 이래 한국에 관련 규정 폐지를 권고해왔다.

폐지해야 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형법이 보호하는 ‘명예’란 사람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로서 그 평가의 저하 여부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형법은 사회적 평가가 실제로 저하됐는지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저하될 가능성이 있는 진실한 사실의 발설만으로 처벌한다. 이와 같은 희미한 반가치성에만 의존하게 되면 사실의 발설 외에도 현실적인 손해 및 양자의 인과관계까지 요하는 민사적 손해배상보다 형벌 부과의 문턱이 더 낮아진다. 이뿐만 아니라 어떤 진실한 사실이 발설됨으로써 저하될 가능성이 있는 명예란 그 발설된 진실한 사실 없이 형성된 사회적 평가이므로 ‘허명’에 불과하다. 거짓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형벌로 제한하는 형법은 과잉이다.

진실한 사실의 발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일 땐 처벌하지 않는 예외조항(형법 제310조)이 있긴 하다. 그러나 공익관련성과 사익관련성을 두부 자르듯 가르기는 불가능하다. 헌법재판소도 공익성은 모호하고 불확정 개념이어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나아가 표현의 자유를 개인이 공익적인 차원에서 행사할 때만 형사처벌을 면해 주겠다는 것은 개인의 주관적 공권에 해당하는 기본권의 성격과 정면 배치된다.

일반적으로 공공의 이익은 자유의 허용 한계를 넘어서 행사한 개인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지만, 명예 보호의 영역에서만 거꾸로 국가의 개입을 차단시키는 기제로 활용하고 있다.

이 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진실한 사실의 발설이 공익성을 인정받아 마침내 무죄판결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경험한 성가심과 고초는 많은 용기 있는 자들을 ‘웬만하면 침묵이 금이다’는 격언의 숭배자로 머물게 만든다. 이토록 강력한 ‘위축효과’를 발휘케 하는 이 죄는 형법을 건전한 비판의식의 마비자이자 불법행위의 가림막으로 변질시킨다.

진실한 사실의 발설로 인해 실추될 가능성이 있는 명예는 민사상 손해배상의 수단으로 보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존치론자들이 강조하는 ‘사생활’도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으로서 이 죄를 통해 과보호를 누리고 있는 명예와는 차원이 다르다.
표현의 자유는 ‘허위의 사실을 발설한 경우라도 진실로 오인하는 데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할’ 정도로 최대한 보호돼야 한다. 이와 같이 진실한 사실의 태양빛이 비춰지는 대역을 넓혀두지 않으면 공익성의 그늘 아래 은폐해 놓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을 바로잡기 어렵다. 민주사회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외침은 대나무 밭이 아니라 광장에서 울려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반대] '피해자 비밀 보장' 보호막 없어져… '2차 피해' 입을 가능성 높아질 것
온라인서 '아니면 말고'식 소문 더 판칠 수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이것은 양날의 검이다. 어느 때는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고 또 어떤 때는 범죄 가해자를 보호하기도 한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성폭력 피해자를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있는 법규정이기도 하지만, 또한 이 규정은 누군가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들춰냈을 때 처벌하는 근거 규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악의 법개정은 법개정을 통해 이루려고 하는 목적을 성취하기는커녕 법을 개정해 보호하고자 한 사람에게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경우다. 필자는 형법 제307조 제1항 폐지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본다. 이 조항이 폐지되면 성폭력 피해자는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위협받고, 또 다른 2차 피해를 입는다. 피해자 신상의 비밀 보장이라는 보호막도 사라진다.

성폭력 범죄 사실도 ‘사실’이다. 사실을 말하는 것이 범죄가 되지 않는다면 이런 극악한 범죄 피해자는 언제 어디에서든 자신이 당한, 이제는 잊고 싶은 그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고 참아야만 한다. 최악의 경우 성폭력, 성희롱 가해자나 그 가족이 주변에 사건의 수사나 재판 사실을 알리면서 피해자를 이른바 ‘꽃뱀’으로 몰고 압박할 수도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존재하는 지금도 많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면서 “이런 일이 알려지면 당신에게도 안 좋은 것 아니냐”는 말을 쉽게 한다.

범죄 피해자뿐만 아니라 범죄자 가족이 입는 피해도 상당하다. 실제로 아버지가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고 자살한 고등학생도 있다. 이혼의 경우는 또 어떤가? “저 사람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 이혼했다”는 말은 범죄가 아닌가? 학교폭력 문제는 또 어떤가? “누가 몇 학년 때 왕따를 당했대”, 또는 “누가 왕따를 했대”라는 말은 범죄가 아닌가? 사실을 말한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고 질문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사실을 듣는 것이 상처일 때가 없었느냐고. ‘사실’은 때로는 허구보다 더 가혹한 폭력이 된다. 아무리 사실을 말한다 해도 그것이 어떤 인격체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결과를 야기한다면 ‘죄’라고 규정하겠다.

우리 형법 제310조는 ‘제307조 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이 미투 운동 참여자를 보호한다. 범죄 피해자를 향해 명예훼손한 자들은 이 규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법원은 ‘공공의 이익’과 관련해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 내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돼 있더라도 형법 제310조 적용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어 이 규정이 유연하게 적용되고 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히 법 내용을 변경하는 것은 사회가 변화·발전하면서 당연한 일이지만, 형법의 경우 해당 규정이 그동안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누구를 보호해왔는지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무조건적인 형법 규정의 폐지, 비범죄화는 위험하다.

특히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망을 자랑하는 세계 몇 안 되는 국가다.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 개인의 인격을 말살하는 내용의 글이 너무 쉽고 신속하게 유포되고 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소문을 양산하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사회적 사망선고를 받는다. 또한 이런 피해는 회복하기 쉽지 않다. 이런 사회에서 명예훼손죄 폐지 문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신중하고 냉정하게 논의돼야 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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