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등 대한(對韓) 통상압박 높이는 미국
'중국 견제용' 치부한 대처는 위험
통상법 체계 정비, 국익 보호해야"

오승렬 <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외교통상학 >

지난 16일 미국 상무부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권고한 수입 제한 조치 내용을 공개했다. 최악의 경우, 한국과 중국 등 12개국 철강 제품은 53%의 관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 관련법은 냉전기였던 1962년 미국 안보를 저해할 위험이 있는 수입 품목에 대한 제재를 위해 만들어졌다. 그동안 미국의 통상정책은 주로 시장 교란 여부를 따지는 관세법 틀 속에서 운용됐다. 이번 권고안은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 수입이 안보에 영향을 미치므로 관세 인상이나 수입 물량 제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는 4월 중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만을 남겨둔 이번 조치는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자유무역 원칙보다 미국의 이익에 근거해 통상 문제를 다루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권고안에 대한 한국 반응은 근시안적이다. 미국의 행보를 중국에 대한 견제용으로만 이해한다. 또 관세율 인상이 우리 수출에 미칠 영향을 수치로 평가하고, 기업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는 데 방점을 둔다. 정부 차원에서는 미국 정부와의 타협이나 WTO 제소를 대책으로 내세운다. 안보 동맹국인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서 한국은 강경하게 대응하기를 불편해한다. 소극적 판단과 대응의 저변에는 미국의 통상 정책은 중국에 대한 견제용이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는 막연한 감(感)이 깔려 있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통상 압박이 과연 중국 견제 전략의 파편 정도에 그치는 것인가.
미국의 한국산 철강 수입 규제가 중국 견제의 일환이라는 설명은 너무 안이하다. 2017년 약 30억달러 규모인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 물량에 들어간 중국산 철강 소재 비율은 2~3%에 불과했다. 또 중국의 대미 철강 수출 구조는 저가품 위주다. 한국은 유정(油井)용 강관 등 고품질 중간재 중심이다. 중국의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 수급 규모는 세계 총수급량의 절반 수준에 이른다. 이들 중간재의 경우, 중국은 내수 확대 정책으로 대미 수출 감소분을 흡수할 수 있는 완충 공간이 충분하다. 수출 비중이 큰 한국은 해외 시장 여건의 조그만 변화도 큰 파장을 불러온다.

정작 중국과 미국은 양국 간 무역 전쟁보다 협력이 중요함을 잘 안다. 중국 첨단 제품 수출의 60% 이상을 외국인자본 투자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이 담당한다. 외자 기업에 대한 중국 경제의 높은 기술 및 수출 의존도로 인해 중국이 본격적인 대미 무역 보복 조치를 실행하기는 어렵다. 미국으로서도 전면적인 중국 상품 수입 규제는 결국 중국에 투자한 자국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 중국이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인프라와 첨단산업 투자로 인한 막대한 설비 수요는 미국이 놓칠 수 없는 황금시장이다. 미국 저소득층의 생활 수준이나 산업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라도 중국산 저가제품 수입이 필수적이다. 또 중국은 일본과 함께 미국 국채의 최대 보유국이다. 미 달러 금융자산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협력이 필요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일자리 창출과 경기 부양을 위해서 스스럼없이 힘과 국가주의에 의존하는 또 다른 보호주의 시대에 진입했다.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활용이나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은 안보 및 국제정치와 통상 전략이 결합한 사례다. 한국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중국과는 제2단계 FTA 협상을 앞두고 있다. 북한 문제로 미·중에 대한 한국의 통상 협상력은 약하다. 한국이 타협을 통한 소극적 방어에만 급급할 경우, 미·중의 안보와 통상 결합 전략은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고갈시킬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이들의 통상 압박을 맞받아칠 수 있는 우리 나름의 공격적 통상법 체계를 마련하고, 안보 협력과 통상 문제를 분리해 국익을 보호하는 의연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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