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하는 '나노과학 선구자' 국양 서울대 교수의 쓴소리

연구비 타기위한 연구 횡행
세상을 발전시키기보다는 논문 실적 집착 관행 여전
세상을 바꿀 단 하나의 논문에 평생을 걸어야 노벨상도 가능

성과 급급한 연구풍토 탈피
좋은 논문 많이 나오지만 세계 놀래킬 성공 사례 드물어
도전적 연구에 적극 나서야

은퇴후에도 연구 전념할 계획…고온 초전도현상 규명하겠다

“그동안 학계에, 정부에 쓴소리를 많이 했지만 바뀐 건 없고, 어느 순간 나 자신도 그런 환경에 적응해 있더군요.”

37년의 연구 인생 1막을 마치고 28일 정년퇴임하는 국양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사진)는 ‘부채의식’을 느낀다고 했다. 나노과학 분야의 세계적 선구자로 꼽히는 그는 연구계 전체가 본래의 목적을 망각했다고 또 쓴소리를 했다. “연구의 목적은 몰랐던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해 세상을 보다 발전시켜 나가는 것인데, 한국은 언제부터인가 이를 망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 교수는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꿈 같은 연구를 하는 게 아니라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논문의 양, 피인용, 임팩트팩터(IF) 같은 지표를 맞추는 연구를 한다”며 학계 풍토를 꼬집었다. 이를 “한국엔 좋은 논문이 많은데 좋은 아이디어는 없다”는 말로 요약했다.

AT&T 벨연구소 10년, 서울대 27년 등 40년 연구 인생의 한 막을 마친 그는 10여 년 전 국가석학이 됐다. 2014년에는 국내 최대 민간 학술재단인 삼성 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이 됐다.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과학자로 꼽히는 그는 “정부는 잘못한 게 없다”며 “이제부터라도 스스로 바뀌어야 할 때”라고 했다. 현재의 제도를 만든 주 책임자는 학자들 자신이며, 논문을 위한 논문과 결별하고 연구 ‘성공’의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이대로라면 5~10년 내 학계와 대학에 정체성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경고도 내놨다. 한국의 연구개발(R&D) 예산은 19조7000억원으로 절대액으론 역대 최고 수준이며 SCI(과학기술논문색인)에 오르는 논문이 한 해 6만~7만 편 생산된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소위 대박 상품으로 연결되는 특허는 드물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198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를 스타 과학자로 만든 연구는 1984년 AT&T 벨연구소 재직 시절에 개발한 주사터널링현미경(STM)이다. 원자를 볼 수 있는 현미경인 STM으로 그는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의 표면을 눈으로 확인하며 나노 연구의 한 획을 그었다. 이후 금속 표면의 흡착 현상 관측, 1차원 나노선의 양자화 연구 성과 등을 내놓으며 2006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학술진흥재단이 뽑은 국가석학 10명에 이름을 올렸다.

정년 퇴임 이후에도 민간 재단에서 연구를 지속할 계획이다. 그의 남은 과제는 고온에서 일어나는 초전도 현상의 원리를 규명하는 것이다. 초전도는 금속의 저항이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영하 180~200도의 낮은 온도에서 초전도가 왜 일어나는지는 1980년대에 규명됐지만, 그 이상 고온에서의 초전도는 원리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저항이 없어지면 현재 60%대인 송전 손실률이 떨어져 발전소를 덜 지어도 되고, 환경 문제도 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삼성 미래기술육성재단은 삼성이 10년간 1조5000억원을 투자해 100년을 이끌 선도적 기초과학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2013년 설립한 학술재단이다. 당장 상용화와 거리가 멀더라도 독창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장기 지원한다. 성과 측정, 중간 평가 없이 연구자의 자율을 존중해 기간 중 가시적 성과가 없더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계속 지원한다. 그는 “좋은 논문을 쓴다고 노벨상을 타는 게 아니라 좋은 아이디어를 포기하지 않고 파고들 때 자연스럽게 인정받는 논문이 나온다”며 “시간이 흘러 그것이 세상을 바꾸면 노벨상을 타는 것”이라고 했다.

청년들에게는 “힘든 길일지라도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 경쟁하고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이를 위해 더 많이 읽고 현명한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황정환/장현주 기자 jung@hankyung.com
한국경제 마켓인사이트 M&A팀 황정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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