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연출가에 심사+예산+캐스팅 권력 집중 … 무소불위 권력 휘둘러
"한 번 찍히면 끝장" 연기생활에 엄청난 영향 미치는 권력자들

'연극계 대부'로 불렸던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과 오태석 극단 목화 연출가가 성추행 논란에 휩싸이면서 문화예술계에 만연했던 성폭력 실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는 뒤늦게 문화예술계 성폭력 실태조사와 성폭력 상담 신고 센터를 운영키로 했다.

아울러 성평등문화정책위원회(위원장 이혜경)를 통해 성희롱·성추행 예방 및 대응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국연극협회은 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연출가 이윤택을 제명조치하면서 아울러 법적 조치 방안을 찾겠다고 20일 밝혔다. 한국연극협회는 "연극을 통해 항상 정의, 시대정신, 인류애 등을 외쳐왔지만, 지척에서 벌어졌던 범죄행위에 대해 가해자 혹은 방관자로서 침묵하고 상처 입힌 모순의 세월을 지내왔다"고 반성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예술대학교 대학본부는 성추행 논란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오태석 씨의 수업 배제를 결정했다.

대학본부는 "최근 사회적 물의를 야기하고 있는 우리대학 공연학부 오태석 초빙교수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서 서울예술대학교 구성원 모두는 참담한 심정을 금치 못하고 있다"며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점에 대해 대학본부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사과했다.
이어 "예술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자 창작에 매진해 온 재학생과 학교를 믿고 우리대학에 자녀를 보내주신 학부모 그리고 동문 및 모든 분들이 입었을 상처에 대해 고개 숙여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새롭게 성폭력 가해자로 물망에 오른 배우 조재현의 다음 타자로 연출가 K 씨를 명단에 올리고 있다.

다수의 뮤지컬과 연극을 연출한 인물로 그 파장은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나도 성폭력을 당했다는 미투(me too)운동의 모든 증언들이 충격적이지만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연희단거리패에서 활동했던 배우 김지현이 이윤택으로부터 성폭행 당해 임신했고 낙태까지 했다는 사실은 그 추악함이 충격을 넘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연극계의 어떤 특징이 신인배우들로 하여금 십수년간의 성폭력 앞에서 무력하게 한 것일까.

업계 관계자는 "이윤택이나 오태석 같은 연출가들은 그 업계에서는 황제와도 같은 존재였다"면서 "권력이 분산된 영화계와 달리 연극 연출가에게는 작품 심사, 예산, 캐스팅 등에 대한 모든 막강한 권력이 집중돼 있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성희롱과 같은 적폐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연극계에서는 이어지는 폭로에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와 더불어 이들과 함께 진행하기로 확정됐던 작품에 대한 진행 우려가 극심한 상황이다"라며 "이미 폭로된 이들 외에도 성폭력 폭로 대상에 오를 리스트가 여러 명 더 있다"고 덧붙였다.

권력자의 비위를 거스르는 순간 연기자로서의 인생은 바로 끝날 수 있다는 두려움. 황제와도 같은 권력자로부터 원치않는 성폭력을 당해도 입도 벙긋 하지 못했던 모욕의 시간. 이제는 사회가 그들의 목소리를 끝까지 듣고 응답해야 할 때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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