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문화·제도 쇄신 요구… 신고센터 내달 개설
피해자 지지·위로하는 '위드 유' 캠페인도 시작
이윤택(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의 성폭력 사건과 같은 일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진상 규명은 물론 연극계 위계질서 개선과 구태 문화 청산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연예술분야 표준계약서에 성폭력 관련 조항을 추가하는 등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장 연극인들은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문책을 위한 오프라인 모임을 결성했으며 피해 연극인에게 위로와 지지를 보내는 ‘위드 유(#withyou·당신과 함께)’ 캠페인도 시작됐다.

연극인들은 그동안의 성폭력 피해 진상을 면밀하게 밝혀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연극인 이윤택 씨의 상습 성폭행, 성폭력 피의 사실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조사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글에 함께 청원한 인원은 20일 5만3000명을 넘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예술계 전반의 성폭력 사례를 접수하기 위해 다음달 예술인복지재단에 신고·상담센터를 마련하기로 했다. 또 지난해 문학과 미술, 영화분야에서 시범 실시한 성폭력 실태조사 범위를 문화예술·영화·출판·대중문화산업 및 체육으로 넓혀 시행하기로 했다.

창작집단 LAS가 동참한 ‘위드 유’ 캠페인.

피해자의 아픔을 대변하지 못한데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일고 있다. 연극계에서 막강한 권위와 권력을 누린 사람을 중심으로 불합리한 일들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반성이다. 극작가 겸 연출가 김재엽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결과만으로 평가받는 연극계의 관행 속에서 불합리한 과정과 반인권적인 폭력을 감내해온 수많은 연극인의 고통에 무관심했던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다”고 적었다.

연극인들을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거나 성폭력 가해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항목을 계약서에 처음부터 명시토록 하는 등 제도적 쇄신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립극단에 참고할 사례가 있다. 이 극단은 2015년 이윤택 연출이 제작 중 스태프를 추행한 사건 이후 연출·배우·스태프들과 체결한 계약서에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물리적 언어적 행위를 할 경우 계약을 즉각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민간극단과 협력해 작품을 제작하는 남산예술센터는 올해부터 협력극단에 성폭력 예방교육 전문 강사를 보내 상담과 대화, 성인지 교육 등을 할 계획이다. 공동제작협약서에도 성폭력 발생 시의 조치 사항을 추가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문체부가 만들어 배포한 ‘공연예술 표준계약서’에는 성폭력 관련 조항이 없다. 우연 남산예술센터장은 “표준계약서가 공연예술 현장에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 만큼 성폭력에 대한 조치 사항을 제도적으로 명문화해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도와 별개로 우선적 대책은 연극계의 문화 쇄신이다. 민간 극단에서는 국공립 극장과 계약할 때가 아니면 서로 문서로 계약을 맺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송경화 극단 낭만유랑단 연출은 “성폭력 예방을 위한 일종의 윤리강령을 공유하고 이를 의무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약속을 우리 안에서 한 뒤 지키지 않는 단체가 있다면 문제제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 구제와 조력을 위한 창구도 마련되고 있다. 연출가 이해성 송경화 설유진, 배우 홍예원 등의 연극인들은 매주 수요일 오후 10시 서울 대학로에 있는 극단 고래 연습실에서 정기모임을 하고 법적 조력 등 피해자를 돕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는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할 방법을 논의하고 다 같이 학습해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장치를 마련하자”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연극계에 호소했다.

송경화 연출은 “이 회의는 피해를 입은 연극인들에게 동료들이 옆에 있다는 위안을 주고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연대의 공동체”라며 “앞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들을 찾아나가며 피해자들의 상처를 보듬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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