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올림픽서 500m 은메달

남자 빙속서 8년 만에 메달
올림픽 타이 기록 세웠지만 랭킹 1위 로렌첸에게 밀려

초등 4학년 때 쇼트트랙 입문…대학 진학하며 빙속으로 전환
2016년 이후 기량 폭발적 늘어

"말이 안나올 정도로 벅차…앞으로 더 좋은 성적 내고 싶어"

차민규(왼쪽)가 19일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에서 힘차게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차민규는 이날 은메달을 따냈다. /연합뉴스

‘아! 0.01초.’

이토록 아쉬울 수가 있을까. 손안에 다 들어온 금빛 메달을 0.01초 차로 놓쳤다. 하지만 금메달만큼이나 값진 은메달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올림픽 데뷔전을 치른 ‘얼짱 스케이터’ 차민규(25)가 한국 대표팀에 빙속 은메달을 선물했다. 19일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에서다.

차민규는 이날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500m 결승에서 34초42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36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2위다. 자신의 최고 기록인 34초31에는 못 미쳤지만 올림픽 타이 기록을 세우며 세계 빙상무대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 올림픽 기록은 그러나 세계 랭킹 1위 호바르 로렌첸(노르웨이)이 34초41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곧바로 깨졌다. 금메달도 0.01초를 앞당긴 로렌첸에게 돌아갔다. 중국의 가오팅위가 34초65로 동메달을 가져갔다.

한국이 올림픽 500m에서 메달을 따기는 2010년 밴쿠버올림픽 이후 8년 만이다. 당시 단거리팀 막내였던 모태범(29)이 예상을 깨고 깜짝 금메달을 따내며 무명의 반란을 일으켰다.

이번엔 ‘제2의 모태범’으로 불려온 차민규가 첫 출전한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거머쥐며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전날 ‘빙속 여제’ 이상화(29)가 안겨준 은메달에 이은 평창올림픽 두 번째 빙속 은메달이다. 한국이 역대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따낸 메달은 차민규의 은메달로 총 11개로 늘어났다.

14조 아웃코스를 배정받은 차민규는 길모어 주니오(캐나다)와 맞붙어 역주를 펼쳤다. 초반 스타트가 빨랐다. 100m 타임이 9초63을 찍었다. 나머지 400m 구간에서도 온 힘을 짜내 막판 스퍼트하며 속도를 끌어올렸다. 원심력을 이겨낸 곡선 구간의 주행 각도가 일품이었다.
8년 만에 재기를 노린 모태범이 35초15의 기록으로 16위, 막내 김준호(23)가 35초01로 12위에 이름을 올렸다.

차민규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쇼트트랙으로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코피를 자주 흘리던 그를 강하게 키우려던 어머니가 빙상장으로 이끌었다.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것은 한국체육대에 진학한 2011년. 차민규는 “몸싸움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 종목을 바꿨는데 그게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올림픽과의 인연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오른발목 인대를 심하게 다쳐 선발전에조차 나가지 못했다. 그는 “TV 중계를 보면서 나도 올림픽에서 일을 내고 싶었다. 평창을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고 말했다.

차민규가 일취월장한 시점은 2016년부터다. 그해 12월 열린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2010년 밴쿠버올림픽 500m 금메달리스트 모태범을 누르고 남자부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2017년 1월엔 동계체전 남자 일반부 500m에서 대회 신기록으로 우승하며 ‘차민규 시대’를 예고했다.

이후 승승장구했다.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500m 우승,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500m 동메달을 따냈고, 지난해 12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3차 대회에선 개인 최고 기록인 34초31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차민규가 심상치 않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불과 2개월 앞둔 때였다. 당시 금메달을 차지한 월드컵 세계 랭킹 2위 알렉스 보이버트 라크로익스(캐나다)와 차이는 0.001초에 불과했다.

차민규는 경기를 마친 뒤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벅차다”며 감격해했다. 이어 “앞으로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 잘 타는 후배들도 많으니 (스피드스케이팅에) 많은 관심 가져달라”고 덧붙였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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