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난에 논문·책 살 돈 부족
대학 혁신은커녕 생존 급급
"교육을 복지로 보는 틀 벗어나야"
독일 아헨공대 캠퍼스에는 전기자동차 공장이 있다. 교내 벤처로 시작한 E·go모바일이 둥지를 튼 곳으로 하루 여섯 대를 생산한다. 올해부턴 1만유로짜리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주정부에서 2500만유로(약 333억원)를 지원받아 새 공장도 지을 예정이다.

서울의 한 ‘명문 사학’은 올해 초 해외 학술정보 검색을 중단했다. 전자 논문 제공업체와의 가격 협상이 결렬돼서다. 10년 가까이 시행된 ‘반값 등록금’ 정책으로 수년째 도서구입비가 동결된 대학도 부지기수다.

한국 고등교육이 붕괴 위기에 처해 있다. 혁신은커녕 생존에 급급한 실정이다. 68%로 세계 최고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지만 대학 졸업장 가치는 추락 중이다. 지난해 대졸 실업률은 처음으로 고졸자를 앞질렀다. 교육을 복지로 접근한 ‘교육복지’의 역설이다.
대학들이 지난달 정부에 내민 ‘청구서’에서도 이 역설이 고스란히 읽힌다. 전국 4년제 대학으로 구성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지난 10년간 반값 등록금으로 황폐해진 대학을 정상화하는 데 필요하다며 연 2조8000억원의 예산을 요구했다. 정부의 고등교육 예산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으로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공립대총장협의회도 지역 인재 유출 방지대책이 시급하다며 1조원을 청구했다. 3조원이 넘는 세금 투입이 긴급하다는 게 대학들의 주장인 셈이다.

대학이 무너지면서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국가목표도 멀어지고 있다. 전국 거점 국립대들이 이른바 ‘지잡대(地雜大)’로 비하될 정도다. 인재 배출이 안 되니 지방을 탈출하기만 할 뿐 진입하는 기업은 실종 상태다. 여수와 함께 전남 최대 도시로 꼽히는 순천에는 상장기업이 단 한 개뿐이다. 낮아진 대학 문턱은 역설적으로 진학 열기를 부추겨 초·중등 교육을 입시 경쟁 위주로 내몰고 있다.

이현청 한양대 고등교육연구소장은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 이기려면 대학을 혁신의 공간으로 바꿔야 한다”며 “복지와 규제 위주 정책을 전면 재고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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