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구의 교육라운지]

"영어 버려" 잘못된 시그널 줄 수 있어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영역에서 4등급을 받고도 서울대 정시모집에 합격한 수험생이 나왔다. 개인정보 문제로 공식 확인은 할 수 없지만 충분히 가능한 사례다. 주요 과목인 ‘수능 영어’, 원점수 ‘60점대’, 대입 서열의 꼭짓점 ‘서울대’가 시너지를 일으킨 탓에 파장이 상당하다.

수능 영어 절대평가 전환으로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다. 대학들은 정시의 영어 반영비중을 떨어뜨렸다. 서울대가 대표적이다. 등급간 점수차가 0.5점씩이다. 수능 영어 100점(1등급)과 60점(4등급)의 최대 40점 차이는 실제 서울대 입시에서 1.5점 차이로 좁혀진다.

서울대는 왜 이렇게 등급간 점수차를 적게 뒀을까. 각각 90점(1등급)과 89점(2등급)을 받은 수험생이 연세대 정시에 지원한다고 하자. 원점수 1점 차가 실제 입시에선 5점 차로 벌어진다. 다소 억울한 케이스다. 물론 100점(1등급)과 80점(2등급)도 5점 차로 계산되므로 억울한 경우만 있는 건 아니다.

서울대처럼 등급간 격차를 1점 미만으로 설정하면 이런 논란은 비켜갈 수 있다. 적어도 원점수와 실질 반영점수의 ‘역전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 절대평가 영어의 변별력 약화 요인뿐 아니라 이 같은 배경도 작용한 셈이다.

극단적 사례지만 영어 0점(9등급)도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다. 100점과의 실질반영 차이가 4점 감점에 그치는 선발 방식상 가능해 보인다. 서울대 정시의 반영 변환표준점수(만점 기준)는 수능 수학 120점, 국어 100점, 탐구 80점이다. 이들 과목, 특히 수학이 만점이면 영어 점수가 나빠도 합격권에 들 수 있다.

서울대 정문. / 사진=한경 DB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를 ‘부작용’보다는 ‘효과’로 봤다. 특정 과목 성적이 나빠도 다른 과목에서 만회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 마디로 ‘와이 낫(Why not)?’이라는 반응이다.

그렇지 않다. 문제가 있다. “영어 4등급도 서울대 간다”는 식으로 잘못 해석될 수 있어서다. 영어는 버리고 국어·수학·탐구에 집중하는 ‘전략적 몰빵’ 여지가 생긴다. 영어 사교육은 잡을지 몰라도 학교 교육과정 자체가 뒤틀릴 위험이 커진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선발이 80%에 육박하는 서울대는 그동안 잘못된 시그널(신호)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학종은 정성평가 요소가 크다. ‘금수저 전형’ ‘깜깜이 전형’이란 비판을 받는 까닭이다. 따라서 서울대는 “성적도 중요하다. 학교 공부를 경시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발신해왔다.
고교 교육과정을 정상화하고 학생들이 학교 공부에 충실하도록 유도하는 것. 영어 60점의 합격을 두고 서울대가 고민하는 근본적 지점이다. 단지 ‘급’ 안 되는 수험생 합격이 문제라는 게 아니다.

입학 후 충분한 수학능력이 있는지도 검토해볼 문제다. 학내에선 신입생 기초학력 저하에 대한 문제의식이 크다. 한 서울대 교수는 “영어 60점 합격은 솔직히 충격이다. 특히 4등급 학생이 합격했다는 원자핵공학과는 영어 원서 교재도 많이 쓰는데…”라며 걱정했다.

이러한 고민과 우려가 서울대의 영어 반영방식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 당장 바꾸긴 어렵다. 대입 사전예고제에 따라 서울대는 2019학년도 입학전형계획을 이미 발표했다. 다음달 내놓는 2020학년도 입시계획에 관심이 쏠리게 됐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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