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징역 20년
구속 기소후 14개월 만에 1심 판결

법조계 예상 뛰어넘는 중형
삼성의 승마지원 72억 등 19개 혐의 대부분 유죄

법원 "안종범 수첩에 적힌 박근혜의 지시사항은 정황 증거"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1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20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받고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사건의 첫 번째 법적 판단은 최씨에 대한 징역 20년이라는 중형 선고로 마무리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13일 선고공판에서 최씨에 대한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최씨에게 벌금 180억원을 명령하고, 72억원을 추징했다.

◆‘안종범 수첩’ 증거 인정

특검의 구형량인 25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는 중형 선고라는 평가다. 재판부는 재단 출연이나 삼성 관련 뇌물수수 등 최씨의 혐의 대부분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연관시켜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사실상 ‘한몸’으로 공모했다고 봤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과 관련해 재판부는 “대통령의 직권을 남용해 기업체에 출연을 강요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증거로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 수첩의 증거 능력을 인정했다. 수첩에 박 전 대통령이 지시한 각종 사업의 구체적 내용이 적혀 있고 이것이 최씨의 재단 설립 및 관련 활동 정황을 설명해준다는 판단에서다. 재판부는 “개별 면담자 사이에 수첩 기재와 같은 내용의 대화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간접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로서의 증거 능력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대화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면, 박 전 대통령이 누구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수첩 내용상의 대화를 나눴는지를 추론할 수 있다. 최씨가 박 전 대통령에게 특정 현안을 이야기하면 이를 박 전 대통령이 기업 총수 등에게 전달했다는 증거로서 안 전 수석 수첩의 증거 능력이 효력을 발휘한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결국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한몸’을 잇는 증거라는 특검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들인 것이라는 평가다.

최씨가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딸 정유라 씨의 승마 지원비 등 433억원 상당의 뇌물을 받거나 약속한 혐의 중에는 72억9000여만원을 뇌물액으로 인정했다. 정씨에게 사준 말 소유권이 삼성 측에 있고, 뇌물액은 말 무상 사용에 따른 이익액이라고 본 이 부회장 2심 재판부와 달리 말의 실질적 소유권이 최씨에게 있다고 보고 말 구입액을 뇌물액에 포함해서다.

◆포스코 등 기업 강요하며 ‘이권’

재판부는 법조계의 일반적 예상을 뛰어넘는 판결도 내놨다. 롯데그룹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강요를 받으면서 동시에 제3자 뇌물 공여를 했다고 본 점이다. 박 전 대통령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이에 롯데면세점 사업과 관련해 ‘부정한 청탁’이 오갔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신 회장과 독대하면서 하남 체육시설 지원(70억원)을 요청했다”며 “종합하면 최씨가 박 전 대통령에게 지원을 부탁하고 박 전 대통령이 신 회장에게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공동정범 판단이 신 부회장의 제3자 뇌물공여죄까지 인정하는 근거로 작용했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대부분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관계를 너무 쉽게 인정하고 있다”며 “공동정범으로 인정할 수 있는 일부 정황이 있다고 하더라도 구체적 증거가 없다면 다른 유죄의 근거로 활용하기엔 어려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서 경영 현안을 도와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받고 그 대가로 K스포츠재단의 해외 전지훈련비 등으로 89억원을 내라고 요구한 혐의(제3자 뇌물 요구)도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말미에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을 질타했다. 재판부는 “광범위한 국정 개입으로 국정 질서가 혼란에 빠지고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사태까지 초래됐다”며 “그 주된 책임은 헌법상 책무를 방기하고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사인(최씨)에게 나눈 박 전 대통령과 피고인(최씨)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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