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통합민주당은, 아니 민주통합신당은….” 2011년 12월 민주통합당 비공개 회의에서 당 이름을 두고 해프닝이 벌어졌다. 한 중진의원이 당 이름을 자꾸 틀리게 얘기하자 보좌관이 그에게 ‘민주통합당’이라고 적힌 쪽지를 급하게 건네줬다. 그제야 제대로 된 당 이름을 얘기할 수 있었다. 회의 후 그는 “당명(黨名)이 너무 자주 바뀌다 보니…”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만도 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2007년 8월 합당해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했다. 이 당은 6개월 지나 통합민주당으로 이름을 고쳤다가 민주당(2011년 7월 창당)을 거쳐 민주통합당(2011년 11월)으로 문패를 바꿔달았다.

대부분 한국의 정당들은 창당 때마다 ‘100년 정당’을 표방한다. 1981년 신군부 세력이 주축이 돼 만든 민주정의당은 당원들을 ‘평생동지’로 호칭하며 ‘100년 이상 가는 정당’을 천명했다. 신한국당(1996년 2월), 열린우리당(2003년 11월), 한나라당(2007년 11월), 새정치민주연합(2014년 3월) 등도 그랬다.

그러나 ‘10년 정당’도 드물었다. 짧게는 수개월, 길어야 3, 4년을 넘기지 못하고 당 간판을 바꾸기 일쑤였다. 1948년 제헌선거와 함께 시작된 한국 정당 70년사(史)는 이합집산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체성과 정책이 창당의 밑거름이 되기보다 선거를 위한 ‘1회용 정당’ 형태를 반복하고 있다.
헌정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국회의원 후보를 낸 정당은 210개가 넘는다. 평균 수명은 약 2년6개월로 국회의원 임기(4년)에도 못 미친다. 1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한 정당은 5개밖에 없다. 1963년 5월 창당해 17년5개월간 존속한 민주공화당이 가장 길고 한나라당(14년3개월), 신민당(13년8개월), 민주노동당(11년6개월), 자유민주연합(11년1개월)만이 ‘마의 10년’을 넘겼다.

선진국들은 그렇지 않다. 미국에선 양대정당인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각 164년, 188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영국 보수당(184년)과 노동당(112년)도 마찬가지다. 1955년 창당한 일본 자유민주당도 총선에서 참패해 존폐 위기에 몰린 적도 있었지만, ‘위장 개업’ 식으로 당 이름을 바꾸지는 않았다. 이들 나라의 정당들이 장수하는 이유는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이념의 바탕 위에 서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뭉친 바른미래당이 어제 출범식을 갖고 “100년 이상 가는 굳건한 정당이 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당 정강에 창당 이념을 명확하게 담지 못했다. ‘진보’를 넣어야 한다는 국민의당과 ‘보수’ 가치를 고수한 바른정당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념적 지향점도 없이 출발선에 올라선 셈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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