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춘 편집국 부국장

평창동계올림픽 열기가 뜨겁다. 초반인데도 그렇다. 대표선수들이 엮어 내는 드라마 같은 스토리가 가슴을 벅차게 한다. 경기 중 넘어지고도 1위로 골인한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대표팀, 일곱 번의 수술을 딛고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우승한 임효준, 44개의 슛을 온몸으로 막아낸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골리 신소정 등. 모두가 감동이고 환희다.

선수들의 이런 스토리는 거저 나온 게 아니다. 인내와 노력, 눈물과 땀이 어우러진 결과다. 10여 년 전 이들의 생활을 슬쩍 엿볼 기회가 있었다. 딸아이가 취미로 피겨스케이팅을 할 때였다. “소질이 있다”는 코치의 인사치레에 귀가 얇아져 선수들처럼 레슨을 시킨 적이 있다. 이들의 훈련은 오후 9시 이후에야 시작됐다. 이때부터 피겨, 쇼트트랙,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차례로 빙상장을 빌려 썼다. 당연히 새벽에 끝나기 일쑤였다. 빙상장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 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들어가는 돈도 많았다. 빙상장 대관비, 레슨비, 의상비, 안무비, 대회 출전비에다 해외 전지훈련비까지…. 선수를 하려면 1년에 족히 1억원은 써야 한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김연아 키즈'의 성공과 좌절

그래도 꿈나무들은 줄을 섰다. ‘김연아 열풍’에 평창올림픽까지 확정되자 열기는 더했다. 수많은 ‘김연아 키즈’ 중 평창올림픽 여자 피겨 싱글에 나가는 선수는 달랑 두 명뿐이다. 대부분 좌절을 느끼며 그만뒀고, 일부는 다음 기회를 노리고 있다.

쇼트트랙은 더하다. 국가대표는 곧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만큼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그래서일까. 한때 짬짜미가 있었다. 일부러 져주거나 출전을 포기했다는 고백도 나왔다. 파벌싸움의 유탄을 맞은 선수도 있었다.

평창올림픽 참가가 좌절된 러시아 대표 빅토르 안(한국이름 안현수)도 그중 하나다. 그는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이었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땄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를 5연속 제패했다. 그러던 그가 2010년 밴쿠버올림픽과 2014년 소치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잇따라 탈락했다. 그 뒤 러시아로 귀화해 소치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획득하며 한국 남자팀에 노메달의 치욕을 안겼다.

안현수가 빅토르 안으로 변신한 사연은 무엇일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빙상연맹과의 갈등, 파벌싸움의 후유증이었다는 게 당시 분석이었다. 그를 탈락시키기 위해 대표 선발전 시기를 바꿨다는 주장도 나왔다. 스포츠의 생명인 ‘공정한 경쟁’의 훼손이 그를 러시아로 내몰았다고 할 수 있다.
안현수가 '빅토르 안'이 된 사연

경제도 마찬가지다. 무수히 많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꿈을 안고 도전에 나선다. 그중 성공하는 기업은 몇 안 된다. 대부분은 좌절하거나 이를 갈며 재기를 노린다. 시장도 그렇다. 수많은 참가자가 시장의 룰에 따라 경쟁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기업과 가계, 사용자와 노동자, 외국인과 내국인이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시장의 룰을 흔들어 버리면 어떻게 될까. 극단적으로 빅토르 안처럼 국내 시장을 빠져나가는 참가자가 나오지 않을까. 외국인이 국내 상장주식을 팔 때 양도세를 부과하는 대상을 늘리겠다거나, 어느 날 불쑥 가상화폐거래소를 폐쇄하겠다거나, 재건축 연한을 40년으로 늘리겠다는 것으로 들리는 발언을 했다가 반발이 거세자 없었던 것으로 하는 걸 보면(그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시장의 룰은 이미 흔들리는지도 모른다. 올림픽에서 배워야 할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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