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기술탈취 때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

공동개발·하자 규명 등 기술자료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 대폭 축소

기술관련 분쟁 발생하면 대기업도 '무혐의' 입증해야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대책 관련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 장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정부가 12일 발표한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대책’은 문재인 대통령의 3대 중소기업 정책 중 하나인 핵심 공약이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취임 전부터 ‘1호 정책’으로 꼽는 사안이다. 이날 정부와 여당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자료 요구 금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과 손해배상액 확대, 기술임치제도 활성화, 소송 중 중소기업의 입증 부담 완화 등 강력한 대책을 내놨다.

◆기술자료 요구 등 금지

일단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기술자료를 요구하고 보유하는 관행에 칼을 빼들었다. 상생협력법과 하도급법에서 대기업(원사업자)이 중소기업(수급사업자)에 기술자료를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정부는 아직도 업계에 관행적인 자료 요구가 만연해 있다고 판단했다. 중기부는 이날 “그동안 대기업이 ‘갑’의 위치에서 납품단가 인하와 재계약 체결 등을 이유로 기술자료를 쉽게 제공받고 이를 탈취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날 중기부가 발표한 피해 사례에 따르면 A사 대표는 “해당 기술 개발에 기여하지 않은 원사업자가 특허등록 시 공동특허자로 넣어줄 것을 요구하고 이후 유사 기술을 특허 출원한 뒤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기업 간 기술자료 요구를 금지하고, 비밀자료를 요구할 땐 반드시 비밀유지협약서(NDA)를 쓰도록 했다. 그동안 하도급법에서 인정하던 ‘기술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예외적인 정당한 사유’도 올 상반기 축소하거나 삭제할 예정이다.

피해 기업이 일방적으로 떠안았던 기술탈취 입증 책임을 침해 혐의 기업에도 묻기로 했다. 기술탈취 사건의 증거자료가 대부분 침해 기업 측에 있기 때문에 피해 기업이 이를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중기부가 한 기술보호 실태조사(2016년)에선 중소기업의 77.8%가 “기술 유출 피해를 입었지만 유출 입증이 어려워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침해 혐의 기업의 손해배상액도 기존 손해액의 3배 이내에서 10배 이내로 상향 조정된다. 손해배상액(중앙값)이 미국은 49억원인 반면 한국은 6000만원에 불과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피해 기업 지원 강화
중소기업이 기술을 탈취당한 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도록 예방하는 법적 장치도 강화된다. 일반 중소기업이 잘 활용하지 않는 기술임치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창업·벤처기업엔 임치 수수료를 일반 기업보다 33% 깎아준다. 기술임치제도란 거래기업 간 협의를 바탕으로 핵심 기술자료를 대·중소기업협력재단 등 신뢰성 있는 기관에 보관하는 것이다.

또 분쟁이 발생했을 때 입증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자료 거래기록 등록시스템’(가칭)을 도입한다. 기술자료의 제안 내용 및 송부 내역·일시 등을 기록해 공증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사업 제안, 기술자료 요구 등이 구두나 전화로 이뤄져 중소기업이 자발적으로 준 것처럼 해석되기도 했다.

기술탈취 피해를 입은 기업을 위한 지원도 확대된다. 기술탈취 피해를 긴급경영안정자금 신청요건에 포함시켜 연간 10억원 이내에서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신용대출해준다. 조주현 중기부 기술인재정책관은 “중소기업 기술보호위원회가 설치되기 전까지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해 기술탈취를 근절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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