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JTBC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 문수 역을 맡은 배우 원진아.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JTBC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 문수 역을 맡은 배우 원진아.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잘 할 수 있을까?’에서 시작된 배우 원진아의 첫 도전은 “잘 하고 있나요?”로 이어졌다. 2015년 영화 ‘캐치볼’로 데뷔한 그는 크고 작은 역할로 영화에 출연하다 지난달 30일 막을 내린 JTBC 금토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극본 유보라, 연출 김진원)를 통해 처음으로 안방극장에 출연했다. 시청자들의 평가는 ‘저 배우 누구야?’에서 ‘보석의 발견’으로 바뀌었다. 눈물로 밤을 지새울 정도로 바라던 일이었지만, 막상 이 드라마의 대본을 손에 쥐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지나치게 신경을 쓴 탓에 경련까지 왔다고 한다. 그렇게 큰 부담과 긴장으로 시작한 첫 드라마는 원진아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겼다. 극 중 하문수 역을 맡은 그는 맑은 눈동자와 차분한 분위기로 작품을 부드럽게 이끌었다.

10.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빠져나왔나요?
원진아 : 슬픈 감정에서는 다 빠져나온 것 같아요. 다만 부산에서 5개월 동안 촬영하면서 보냈기 때문에 그 환경과 제작진은 그리워요. 작품의 OST를 들으면 또 감정이 올라오고요.

10. 출연을 망설였다고 들었어요.
원진아 : 오디션에 합격하고서 정말 기뻤지만 고민했어요. 소속사 대표님에게 “못할 것 같아요”라고 전화를 하려다가도 ‘진짜 못하면 어떡하지?’ 싶더라고요. 욕심은 나는데, 무섭기도 했죠. 그 생각에 신경을 써서인지 몸에 경련이 와서 응급실에도 갔어요. 속앓이를 좀 했죠. 이 좋은 작품을 제가 망칠까봐 걱정이 앞선 것 같아요. 마음을 먹고 나서는 이렇게 좋은 작품인데 나 하나 때문에 흔들리진 않을 거라고 생각을 바꿨고, 제작진이 저를 쓰겠다고 판단하셨으니 믿고 따라가자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그렇게 완주를 했네요.(웃음) 처음의 걱정은 촬영 현장에 간 이후 싹 사라졌어요. 워낙 편안하게 만들어주셨거든요.

10. 문수는 어떻게 그리려고 했나요?
원진아 : 우선 문수는 저와 공통점이 있어요. 엄마와의 관계 역시 저도 첫째 딸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있죠. 대본만으로도 모든 걸 이해했어요. 사고로 인한 문수만의 특수한 슬픔이 있잖아요. 그래서 관련 자료를 찾아봐야 하나 고민했어요. 그런데 극에서도 나오지만, 피해를 입은 이들의 상처가 모두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똑같은 표현, 똑같은 감정의 깊이가 아닌 거죠. 자료 대신 대본을 보면서 ‘만약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생각해봤어요. 감독님도 “미리 지나치게 연습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현장에 가면 그 분위기와 상대 배우의 연기에 따라 또 달라져요. 어느 정도로 표현할까만 염두에 두고 모든 건 현장에서 완성됐어요.

10. 극 중 엄마인 윤유선과의 호흡이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엄마가 목욕탕에 빠져 있는 장면에서 그간 숨겨온 문수의 감정이 터졌고요.
원진아 : 찍기 전부터 가장 걱정했던 장면이었어요. 제대로 하지 않으면 보는 사람들 눈에도 가짜처럼 보일 것 같았죠. 촬영장에서는 실제로 무서웠어요. 물에 떠있는 엄마의 모습이…또 엄마라는 단어가 내뱉으면 울컥하잖아요. 그 무서운 상황에서 엄마를 부르면서 감정이 확 올라왔죠. 집중이 잘 되는 환경이었어요. 사실 엄마와 몸싸움을 하는 것도 대본엔 없었는데, 연습을 하면서 윤유선 선생님과 같이 만들었어요. 서로 밀치는 행동이 들어가니까 힘과 감정이 더 커지더라고요. 현장에서 얻은 에너지로 표출했습니다.

10. 그동안은 감정을 숨기다가 그 장면에선 왈칵 쏟아내고, 또 아무렇지 않다는 듯 돌아오잖아요. 연기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원진아 : 오히려 그게 더 현실적이었어요. 엄마랑 딸들이 원래 그렇잖아요, 다퉈도 금세 풀고.(웃음) 감정 장면이어서 그날 촬영의 마지막 순서로 정해주셨는데, 초반엔 경험이 없어서 고민했어요. 잘 표현한 게 맞는지 계속 물었죠. 사실 그 장면은 재촬영을 한 번 했어요. 날것의 감정인 데다 얼굴도 예쁘지 않게 나왔다고 감독님이 “다시 찍자”고 하셨죠. 그런데 실제 방송에는 처음에 찍은 장면으로 나갔어요. 아무래도 진짜 감정이 나온 게 더 좋았나 봐요. “제가 한 게 맞아요? 다시 찍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란 질문을 촬영 내내 한 것 같습니다.(웃음)

10. 어느 시점부터 문수와 가깝게 연기했나요?
원진아 : 정확한 시기는 잘 모르겠어요. 8회까지 찍어놓고 방송을 시작했는데, 방송하기 전이었던 것 같아요. 촬영지인 부산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문수로 살았어요. 그럼에도 완전히 이입한 건 아니어서 의문은 항상 따라다녔고요. ‘잘 가고 있는 건가?’, 방송을 보면서도 ‘잘 한 건가?’ 싶었죠. 다 보고 나서도 아쉬움만 남아요.(웃음)

배우 원진아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배우 원진아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10. 연기가 혼자만의 싸움이라는 것도 알았겠죠?
원진아 : 주위를 둘러봐도 문수에 대해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감독님과 대화를 나눠도 매번 의견이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요. 잡아주셔도 이해가 잘 안될 때도 있었죠. 알아들을 때까지 몇 번씩 반문을 했어요. 다행히도 어떻게든 저를 납득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주셔서 무사히 촬영을 마쳤어요. 그 과정이 외롭더라고요. 촬영 쉬는 날 다들 서울에 가도 저는 부산에 있었어요. 바람을 쐬기도 하고, 책도 보면서요. 외로웠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문수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부산에서 5개월 동안 촬영한다고 해서 놀랐어요. ‘에이~ 설마’ 하고요.(웃음) 오히려 그게 저에게 득이 됐어요. 촬영이 힘들어도 부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위로받았거든요.

10. 거의 반년을 보냈으니 그립기도 하겠어요.(웃음)
원진아 : 자주 가던 식당도 생각나고(웃음) 며칠 전에는 한 스태프가 문수의 방 세트장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줬는데 “아~~” 하면서, 그리웠어요.

10. 데뷔 후 첫 드라마여서 겁도 났을 텐데, 기분 좋게 시작한 것 같군요.
원진아 : 운 좋게도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모두 좋은 촬영 현장에서 연기를 했어요. 드라마 하기 전에 한 선배가 “드라마 찍어 봐라. 진짜 힘들 거야”라고 했는데, 웬걸요 정말 좋은 거예요.(웃음) ‘뭐가 힘들지?’ 싶었어요. 정말 제작진이 한 가족 같았고, 현장은 웃음이 끊이질 않았어요. 드라마는 슬픈 내용이었지만 현장 분위기는 늘 따뜻했죠. ‘어쩜 이렇게 마음이 예쁜 사람들만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찍고는 “괜찮아요, 괜찮아요” 해도 누군가 와서 손을 꼭 잡아주고요, 응원의 글이 적힌 메모도 줘요. 힘든 장면을 찍은 뒤엔 항상 촬영감독님이 “푹 쉬어”라며 안아주셨어요. 이런 사람들이 어디 있어요.(웃음)

10.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기하면서 배운 점은 없나요?
원진아 : 사연 없고 상처 없는 사람들은 없잖아요. 저는 힘들어도 입 밖으로 내뱉는 성격이 아니었어요. 표현을 하지 않고 더 밝은 척했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진짜 모르더라고요. 감추고 속에서는 쌓여만 가는데 말이죠. 이 드라마를 하면서 배운 건 혼자 끙끙 앓고 쌓아두기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란 걸 알았어요. 그러다 보면 문수처럼 한 번에 터뜨리게 될 건데, 그건 정말 위험하죠. 그래서 표현을 해야 할 땐 하려고요. 요즘 많이 표현하고 있어요.(웃음)
10. 배우의 길은 언제 선택했습니까?
원진아 : 연기자가 되고 싶고 제대로 연기를 배워보고 싶은데도 하고 싶다는 말을 못 꺼냈어요. 입안에서만 맴맴 돌 던 시간이 있었죠.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 영화를 보면서 혼자 몰래 따라 해봤어요.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연기학원에서 특강을 한다고 해서 갔어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가 뻔뻔하게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주어진 대사를 읽는데, 진짜 그 인물이 된 것처럼 화가 나더라고요. 그 기분과 느낌이 재미있었어요. 계속하고 싶었죠. 그렇게 고3 때 연극영화과로 입시를 준비했는데 떨어졌죠. ‘이 길이 아닌가?’ 싶었고 부모님께 또 하겠다는 말을 못했어요. 그러다 3년쯤 지나서 부모님께서 연기를 해보라고 하셨죠. 그때 고향인 천안에서 서울로 올라왔고, 독립영화를 찍게 된 거예요.

10. 연기를 포기하고 살았던 3년은 힘든 시간이었겠군요.
원진아 : 정말 우울했어요. 밤마다 울고, 친구를 앉혀 놓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울었죠. 왜 사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다 버리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나만을 위해 살고 싶다’, 간절함은 점점 더 커졌죠.

원진아는 “진심을 다해 연기하는 배우가 되겠다”고 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원진아는 “진심을 다해 연기하는 배우가 되겠다”고 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10. 지금 누구보다 부모님이 기뻐하시겠어요.
원진아 : 많이 미안해하셨어요. “더 일찍 시켜줄걸…” 하시면서요. 오히려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누구보다 간절함이 컸어요. “연기는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엄마한테 이야기하죠. 그러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여든이 넘으신 할아버지가 오후 11시 드라마를 본방송으로 보셨대요. 마음이 짠했죠. 얼마전에도 전화를 하셨어요. 언제 오냐고요.(웃음) 설날에 찾아뵙고 인사드려야죠.

10. 연기 욕심도 커졌죠?
원진아 : 책임감이 생겼어요. 대충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죠. 가족과 지인에게 제 이야기를 물어본다고 해요, 그러니 이제 혼자만의 얼굴도 아닌 것 같고요.

10.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도 있나요?
원진아 : 부담이 있긴 한데, 역할의 감정이 좋으면 선택하고 싶어요. 누군가는 “또 주인공 해야지?”라고 하는데, 이번엔 특수한 경우잖아요.(웃음) 정말 운 좋게도 좋은 작품을 만나서 주인공을 하게 된 거죠.

10. 오디션을 보면 날카로운 평가에 자존감이 떨어지진 않나요?
원진아 : 처음엔 손이 떨릴 정도로 긴장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웃음) “개성파라고 하기엔 개성이 없다” “목소리가 저음이어서 남자 같다. 높은 톤도 낼 수 있나?”란 말도 들었어요. 또 어떤 감독님은 “얼굴이 어느 한쪽으로 튀지 않아서 뭘 해도 어울리겠다”고 했고요.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첫 예고 영상이 나갔을 때 댓글을 봤는데 ‘주인공 하기엔 너무 안 예쁜 것 아니냐?’고 하셨더라고요. 그렇게 못생기진 않았는데…(웃음) 오히려 방송을 시작하고 평범한 느낌의 외모여서 더 몰입해서 봐주신 것 같아요. 이 일을 하면서 저도 몰랐던 제 얼굴을 보는 게 흥미로워요.

10. 댓글을 확인하는 편인가요?
원진아 : 와닿는 글도 많아요. 욕을 많이 먹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없더라고요.(웃음) 주위에선 보지 말라고 해요, 상처받을까 봐 그렇겠죠. 근데 저는 그것조차 신기해요. 누군가 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게 말이죠. 심한 말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이거 봐, 나한테 이런 말을 해”라며 웃어 넘겨요.

10. 늘 평가받는 직업이죠.
원진아 :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 묻고 답에 집착해요. ‘그냥 사랑하는 사이’를 찍으면서 초반에는 감독님께 ‘오늘 저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요?”라고 여쭤봤어요. 그러면 감독님은 “오늘은 뭐가 있었지…”라며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해주세요. 뭐가 부족한지 듣고 싶어서 그 말에 집착했죠. 귀찮아하지 않고 진지하게 생각을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 말은 대본에 다 적어놨어요.

10. 이번 드라마를 통해 연기자로서 보완할 점을 찾았나요?
원진아 : 만족하는 건 거의 없어요. 진심으로 연기하려고 애썼는데, 아쉬운 게 훨씬 많아요. 제 눈에는 다 보이는 거예요. 아쉬운 장면을 볼 때마다 ‘어떡하지? 아~’ 하면서요.

10. 선배들과 연기하면서 얻은 것도 많겠죠?
원진아 : 신인이 이렇게 깊은 감정을 오가며 폭넓은 역할을 하기 힘든데, 빠른 시간에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요. 나문희, 윤유선 선생님의 연기를 보면서 그 순간에 집중해서 진짜처럼 느끼고, 진심으로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더, 진심으로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10. 올해 계획은요?
원진아 : 영화 ‘돈’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어요. 올해는 새로운 작품을 하는 게 목표예요. 그 인물처럼 보이는 연기를 하는, 진심을 다하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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