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유출 통제 여파…유동성 위기에 중국 기업들 줄줄이 매각

자회사 포함 총부채 1조위안 규모
미국 상업용 부동산 전부 내놔
런던·홍콩 등 자산도 대거 처분

완다·안방보험 등 매각 '러시'
미국 기업 대상 M&A 72% 급감
공격적으로 해외 기업을 사냥해 세계 인수합병(M&A)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던 중국 하이난항공(HNA)그룹이 미국에 소유한 모든 부동산을 매각하기로 했다. 중국 금융당국이 무분별한 해외 M&A에 제동을 걸면서 유동성 위기에 몰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롄완다그룹, 안방보험그룹, 푸싱그룹 등 M&A와 관련해 금융당국 조사 대상에 오른 다른 기업도 지난해부터 줄줄이 자산을 팔아치우고 있다. 이로 인해 작년 중국 기업의 해외 M&A 규모는 전년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중국 정부의 규제 조치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올해 중국 기업의 해외 M&A는 더욱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본격적으로 빚 청산에 나선 HNA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HNA그룹은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오피스빌딩 ‘245 파크애비뉴’ 매각 작업을 벌이고 있다. HNA는 지난해 5월 이 건물을 22억1000만달러(약 2조4160억원)에 매입했다. 당시 기준으로 역대 뉴욕시 상업용 부동산 거래 중 최대 규모였다.

HNA는 이 건물 외에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지에 있는 상업용 부동산도 처분할 계획이다. HNA가 소유한 미국 내 부동산 자산은 총 40억달러로 추정된다.

HNA는 2015년부터 작년 상반기까지 해외에서 공격적으로 M&A를 벌여왔다. 미국 대형 호텔체인 힐튼월드와이드홀딩스와 독일 도이치뱅크 지분을 사들여 최대주주가 되는 등 이 기간 공개된 주요 M&A만 해도 80여 건에 달했다. 해외 투자를 위해 끌어모은 자금은 400억달러로 추산된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자금줄을 조이면서 HNA는 작년 하반기부터 유동성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11월 기준 장단기 부채는 전년보다 36% 증가한 6375억위안에 이르고, 자회사 부채를 포함하면 1조위안(약 172조원)에 달한다. 올해 1분기에만 약 650억위안의 부채를 상환해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HNA는 지난달 호주 시드니에 있는 건물을 블랙스톤그룹에 165만달러에 팔았다. 작년 초 18억달러에 사들인 홍콩의 부동산 두 곳도 처분하기 위해 인수자를 찾고 있다. 영국 런던에 있는 오피스빌딩과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 있는 리조트 매각에도 착수했다. 부동산 시장조사업체 리얼캐피털애널리틱스에 따르면 HNA가 보유한 해외 부동산 규모는 140억달러에 이른다.

◆다른 기업들도 일제히 자산 매각
중국 금융당국은 2016년 7월부터 다롄완다, 안방보험, HNA, 푸싱, 로소네리그룹 등 문어발식으로 해외 기업을 M&A한 다섯 개 기업의 부채 상황을 정밀 조사해왔다. M&A 과정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가 중국 금융시장의 시스템 위기로 확산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당국은 중국 주요 은행에 이들 기업에 대한 대출 연장과 신규 대출을 금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해외 은행에도 자금을 지원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자금난에 몰린 이들 기업은 지난해부터 잇달아 자산 매각에 나섰다. 중국 최대 부동산 그룹인 다롄완다는 작년 7월 테마파크와 쇼핑센터, 호텔 등으로 이뤄진 문화·관광 프로젝트 지분 91%와 호텔 76곳을 632억위안(약 10조9000억원)에 팔았다. 이달엔 영화관 체인사업 지분 12.77%와 상업 부동산 지분 14%를 각각 78억위안과 340억위안에 매각했다.

안방보험은 지난해 8월 농업은행과 공상은행, 중국은행, 중국건설은행 등 네 개 대형은행 주식을 처분해 66억위안을 조달했다. 금융당국은 안방보험에 추가로 해외 자산을 매각할 것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용등급이 ‘투자부적격(정크)’ 등급으로 떨어진 푸싱그룹도 호주의 오피스빌딩 노스시드니타워 지분 95%를 1억920만달러에 매각하는 등 지난해 300억위안어치의 부동산과 채권, 주식 등을 처분했다. 푸싱은 리조트업체 클럽메드와 뉴욕의 리버티빌딩, 태양의 서커스 등 150억달러가 넘는 해외자산을 사들이며 덩치를 키웠다.

◆中, 해외 기업 M&A 크게 위축

당국의 규제 강화로 작년 중국 기업의 해외 기업에 대한 M&A는 전년보다 급감했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기업의 해외 M&A 액수는 1214억달러로 전년(2250억달러)보다 44.8% 감소했다.

지역별로는 미국 기업에 대한 M&A가 2016년보다 72% 줄어든 183억달러에 그쳤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기업의 자국 기업 인수를 경계하면서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심사가 엄격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반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주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에 속하는 지역에서의 M&A는 214억달러로 전년의 11배로 급증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