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은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하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정신이다. 하지만 기업인 중에는 불황장기화, 경쟁격화 등으로 인해 이런 정신이 위축되는 사례가 많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기업가정신지수(GEI)’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3위에 머물렀다. 50년 이상 현장을 누빈 기술인 김종영 영일화성 사장(85)과 25년간 회사를 이끌어온 박상백 두림야스카와 사장(56)은 한국의 기업가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75세부터 주경야독…장수기업 비결 책에 담은 '박사 CEO'

◆김종영 영일화성 사장

김종영 영일화성 사장(85)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50년 이상 현장을 누빈 합성규산염 기술자다. 1933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그는 15세에 월남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62년 규산염 제조공장에 공원으로 입사하면서 이 분야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이 회사의 공장장을 거쳤다. 그 이후 세탁비누를 생산하는 업체인 삼흥유지의 부장, 또 다른 규산염 제조사의 부사장을 거친 뒤 46세 나이에 영일화성상공사를 창업(1979년)해서 40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다. 지금도 작업복 차림으로 인천 가좌동 공장을 누빈다.

영일화성은 전형적인 중소기업이다. 가용성규산염, 실리카졸, 합성수지 등을 생산한다. 가용성규산염(물유리)은 토목, 건축, 주조, 제지, 세제, 세라믹, 내화물, 합성실리카 제품들의 원재료 및 결합재 등으로 사용된다. 실리카졸은 정밀주조, 내화물, 세라믹, 도료, 코팅, 연마 등의 분야에 사용된다. 합성수지 접착제는 종이, 목가공, 기타 용도로 사용된다. 이 회사는 ‘자연과 조화로움을 이루며 인간에게 유용한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기업’을 모토로 친환경 바인더와 접착제 분야에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16건의 발명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김종영 사장은 “환경과 안전이 중요시되는 시대에 비춰볼 때 발전가능성이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창의성과 진취성을 강조하며 바쁘게 사업을 해온 김 사장은 배움에 대한 갈증을 견디지 못하고 75세인 2008년 숭실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학부를 마친 뒤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여든이 넘은 나이에 박사과정에 진학해 학업과 연구를 수행했다. 젊은 학우에 질세라 열심히 노력했다.

그는 “장애인 심정으로 학업에 임했다”고 한다. 몇 배의 노력을 했다는 의미다. 누구도 학업에 대한 집념을 꺾지 못했다. 2016년 12월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던 날 그의 눈에선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가난과 무식에서 탈피해야 가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유훈을 남겼다. 그가 학위논문을 들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경기도 연천의 어머니 묘소였다. 이듬해 2월 84세의 나이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취득 후 쉴 만도 한데 오랫동안 고민하고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같은 해 12월 숭실대 윤재한 교수와 함께 《장수기업으로 가는 길》이라는 저서도 출간했다. 이 책은 반세기 이상 현장기술인의 길을 걸어온 김 사장 자신이 체득한 경험과 경영학을 접하면서 배운 이론을 융합한 것이다.

김 사장은 “이 책은 많은 기업이 창업 후 성장하지 못하고 폐업하는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개선해 보고자 하는 노력으로 집필하게 된 것”이라며 “경영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정리한 책”이라고 덧붙였다. 이 책은 한국을 비롯한 일본, 독일, 중국, 미국의 장수기업 사례를 분석해 장수기업들의 특징을 정리했다. 기업경영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100년, 200년을 이어가는 장수기업으로 지속성장을 할 수 있는지를 말하려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장수기업 경영전략 사이클 모형’을 제안했다. 기술기반 창업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가정신, 네트워크역량, 연구개발, 기술축적, 혁신체계 등을 바탕으로 어떻게 성과를 창출하고 이어갈 수 있을지를 제안하는 하나의 모형이다. 김 사장은 이미 규산염 관련 저서 2권을 저술한 바 있어 이번이 세 번째 저서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현장을 누비며 신제품 신기술 개발에 전력할 생각이다. 아울러 국내에서도 유럽, 일본과 같은 장수기업들이 많이 자리 잡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을 보탤 생각이다.

박상백 두림야스카와 사장이 안양 신사옥에서 글로벌 시장 공략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김낙훈 기자

"日야스카와전기와 손잡고 도장로봇으로 해외시장 개척"

◆박상백 두림야스카와 사장


경기 안양시 호계동, 국제유통단지 옆에 새로운 랜드마크가 들어섰다. 지상 8층, 지하 3층의 이 건물은 층고가 높고 탁 트인 전망을 갖고 있다. 주춧돌을 연상시키는 단단한 조형미와 전면 커튼월로 구성된 이 빌딩에는 ‘두림야스카와’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대지 약 2800㎡, 연건평 1만6500㎡ 규모다.

이 빌딩은 두림야스카와(사장 박상백·56)가 건립한 것이다. 건립을 위해 관계사인 야스카와전기도 지원했다. 빌딩은 작년에 완공됐지만 올해 초부터 사무실 이전을 시작해 전체 빌딩 중 절반 정도는 아직 비어 있다. 박상백 사장은 “준공식은 따로 할 생각이 없다”며 “다만 오는 6월5일 ‘두림패밀리데이(Doorim Family Day)’란 이름으로 관계사들이 모이는 행사만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3년 2월1일 설립된 두림(종전 이름은 두림로보틱스)은 올해 창업 25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도장로봇시스템과 실링로봇시스템 등을 생산하며 국내 시장을 개척해온 두림은 2년 전 일본의 야스카와전기와 합작으로 전환했다.

이 회사의 주요 제품은 스프레이식 도장로봇 시스템이다. 일반적으로 3단계로 구성되는 도장 공정은 녹 방지 등 표면 보호는 물론 제품의 외관을 결정하는 중요한 공정이다. 도막의 두께가 마이크로미터 수준으로 일정해야 하고 제품의 컬러에 따라 초 단위로 신속하게 노즐 등을 세척하고 새로운 컬러의 도료를 분사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기술들이 필요하다. 이 회사의 핵심 역량이 이 부분이다. 방폭·방진 설계와 도장기술, 도장로봇 응용기술, 제어기술(설계 및 소프트웨어 기술)을 갖추고 있다.

새 빌딩은 두림야스카와의 지난 25년간 성장을 상징하는 기념탑이자 앞으로의 글로벌 도약을 상징한다. 본사도 경기 화성시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별도 건물에서 운영하던 연구개발(R&D) 센터도 본사로 통합했다.

본사의 엔지니어링 인력과 연구개발 인력의 협업을 활성화해 경영 효율을 높임은 물론 도장자동화를 넘어선 스마트 팩토리를 구현하고 기술 실용화 및 운영 소프트웨어 개발을 더 가속화하기 위한 결정이다. 2월에는 야스카와전기의 수원지점도 입주할 예정이다. 회사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도장 및 실링 로봇을 실습할 수 있는 교육장과 로봇 전시장도 들어설 계획이다. 박상백 사장은 “도장 엔지니어 육성을 위한 교육센터, 스마트 팩토리 전시장으로 확대해 도장공장 자동화 분야의 중심지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야스카와전기의 강점을 살려 글로벌 전략의 핵심을 해외시장 개척으로 잡았다”고 말했다. 두림야스카와의 연매출은 800억~1000억원 수준이다. 야스카와전기는 약 5조원에 이른다. 후쿠오카에 본사가 있는 야스카와전기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고 글로벌 네트워크도 탄탄하다. 화낙 쿠카 ABB와 더불어 세계 4대 산업용 로봇업체다.

박 사장은 “중국 기업들이 독일의 히든챔피언 기업을 매년 수십 개씩 인수하고, 일본 기업이 독일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 등 글로벌 경영환경은 급변하고 있다”며 “이런 합종연횡의 핵심은 글로벌 경쟁력 강화”라고 말했다. 두림야스카와는 이를 위해 작년부터 세계 최대인 중국 시장 활성화를 위해 신공장을 건설하는 등 시설 투자를 진행 중이다.

박 사장은 “두림의 강점인 도장 및 실링시스템 기술과 야스카와전기의 산업용 로봇 기술을 결합하면 얼마든지 해외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며 “올해는 두림야스카와가 글로벌 도장 시스템 기업으로 도약하는, 실질적인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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