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네이버 FARM

짠 음식은 요즘 ‘공공의 적’으로 꼽힌다. 나트륨은 과다 섭취시 고혈압, 위암 등 각종 질환을 유발하는 범인으로 지목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하루 나트륨 섭취량은 2000mg이지만, 한국인들의 일일 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이를 크게 넘는다. ‘2017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만 9세 이상 한국인의 평균 하루 나트륨 섭취량은 3806mg에 이른다.

나트륨 과다 섭취 폐해를 막기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기관은 나트륨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나트륨이 많이 들어있는 식품은 먹지 말라는 권고를 내놨다. 이 같은 움직임은 멸치 업계에 위기로 다가왔다. 소금을 뿌려 건조시키는 멸치는 짠 음식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 탓에 수온이 상승해 품질 좋은 멸치 잡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나트륨 과다 섭취의 범인으로 지목되면서 멸치는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멸치 유통회사인 조혜정의멸치연구소의 조혜정 대표는 이런 위기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멸치는 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짜지 않은 멸치’를 만들 수 있다면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제품은 괜찮은 것 같은데 너무 짜요”

조 대표가 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제품을 처음 온라인몰을 통해 팔았을 때였다. 조 대표는 하루에 한 품목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원어데이’에 ‘지리 멸치’를 판매했다. 지리 멸치는 아주 작은 멸치를 말한다. “하루에 2500박스를 팔았어요. 당시로서는 대박에 가까운 실적이었는데 정작 댓글을 보니 마냥 웃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더라고요.”

당시 댓글의 80%는 ‘제품과 가격은 좋은데 너무 짜다’ ‘아이들에게 먹이려고 샀는데 짠맛이 강해 못 먹이겠다’는 내용이었다. 조 대표가 판매한 지리멸치의 염도는 12%. 일반 멸치의 염도가 9~10%인 것에 비해 좀 더 높은 수준이었다. 조 대표는 “소비자들이 짠 맛에 이렇게 민감한 줄 몰랐다”며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염도를 낮추면 판매도 늘어나고 국민 건강에 기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소금 닦아내는 특허 개발

조 대표가 만든 첫 저염멸치는 염도가 3%였다. 생산 과정에서 소금 투입량을 줄였다. 하지만 문제는 유통과 보관이었다. 멸치의 부패를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는 염분을 빼자 부패가 빠르게 진행됐다. “염도 3%짜리 멸치는 유통과정에서 모두 썩어버렸어요. 생산한 모든 멸치를 폐기해야 했죠.”

조 대표는 소금을 평소처럼 넣되 이후 공정에서 염분을 닦아내는 아이디어를 고안했다. “이물질을 제거하는 세척과정에서 염분도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그는 김진수 경상대 해양식품공학과 교수와 함께 물 온도를 조절하고 멸치 표면에 코팅을 하는 방식으로 염분 제거 공정을 개발했다. 부패를 막기 위해 수분 함량도 더 낮췄다. 조 대표는 “일반 멸치의 건조도가 25~35%라면, 우리 멸치는 18% 수준까지 바싹 건조한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2013년 이에 대한 특허를 냈고 2015년 해양수산부가 선정하는 수산분야 신지식인에도 선정됐다.

멸치의 염도를 낮출 수 있다는 건 염도를 조절해 다양한 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현재 조혜정의멸치연구소가 생산하는 저염멸치의 염도는 납품처에 따라 3%, 5%, 6% 등 다양하다. 조 대표는 “납품처가 원하는대로 염도를 조정한다”며 “처음에 실패했던 염도 3% 멸치는 냉동 상태로 유통된다”고 말했다.

◆한살림부터 이마트까지

조 대표의 멸치 가공공장에는 1년에 한 번씩 50여명의 ‘주부검사단’이 방문한다. 고품질의 식품류를 생산자 직거래 방식으로 판매하는 조합 ‘한살림’의 회원들로 구성된 검사단이다. 이들은 청결도와 제품 성분 등을 일일이 검사한다. 제품을 어떻게 개선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조 대표는 “한살림의 품질 기준을 통과하면 50인의 검사단은 50인의 마케터로 변한다”며 “입소문 마케팅 덕분에 한살림 판매량이 초기에 비해 다섯 배 가량 늘었다”고 했다.

이마트도 주요 거래처다. ‘짠 맛을 줄인 맛있는 멸치‘라는 이름으로 판매된다. 진열을 해야 하는 유통업체 특성상 여기엔 염도가 약간 높은 6% 멸치가 들어간다. 조 대표는 “그래도 염도 10%대의 기존 멸치에 비해 40% 가량 염분을 적게 넣은 것”이라고 했다. 식자재를 유통하는 현대그린푸드에도 납품하고 있으며 현대백화점 온라인몰, 식품 온라인몰 헬로네이쳐 등에서도 판매한다.

가격은 일반 멸치보다 25% 가량 비싸다. 너무 비싼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 대표는 “제품에 자신이 있다”고 했다. 염도가 낮다는 장점 외에도 멸치의 육질과 색, 신선도 유지 측면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저염멸치 특허는 기술보증기금에서 특허담보 대출도 가능한 상태”라며 “독보적인 기술이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3대째 바다인...멸치 스낵 개발 중

조 대표는 수산인 집안에서 자랐다. 할아버지 때부터 경남 삼천포(지금의 사천)에서 수산업에 종사했다. “할아버지는 노를 젓는 어부였고, 아버지는 처음엔 잡어를 잡는 목선을 타셨죠. 아버지가 목선에서 번 돈으로 멸치 배를 구매한 후부터 멸치업에 종사했습니다.” 현재는 조 대표의 오빠인 조봉옥 씨가 조양호와 삼양호 두개의 선단(일반적으로 배 다섯척으로 구성)을 운영하고 있다.

조 대표는 부산에서 사진 스튜디오를 하다가 2008년 무렵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렸을 때는 멸치가 참 지긋지긋했어요. 그래서 사진을 전공하고 도시로 나가서 살았죠.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고 사진관을 운영하는 게 힘들어지면서 오빠가 고향에 돌아와서 멸치 유통을 맡아 달라고 하더라고요. 아버지와 같았던 오빠의 말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돌아왔습니다.”

조 대표가 유통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회사 이름은 배 이름을 딴 ‘조양수산’이었다. 멸치를 잡아서 경매장에 파는 게 회사 사업의 전부였다. 조 대표는 열심히 잡아온 멸치를 경매장에 대량으로 넘기는 데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소비자는 누가 생산했는지, 어떻게 생산됐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생산자의 가치를 인정해주기 어려웠다. 조 대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소비자에게 직접 멸치를 판매해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을 때는 피사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단순한 증명사진을 찍더라도 어떻게 하면 대상의 가장 좋은 모습이 나올까 고민하죠. 사람이 아니라 사물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사진을 찍을 때처럼 우리 멸치를 봤어요. 열심히 잡아온 멸치의 장점을 소비자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염멸치를 비롯한 다양한 소매용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회사 이름도 딱딱한 조양수산에서 친근한 ‘조혜정의 멸치연구소’로 바꿨고요.”

◆“더 많은 사람들이 멸치를 먹었으면 좋겠어요”

조 대표의 올해 목표는 한 가지다. 더 많은 사람이 멸치를 먹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 대표는 식자재 회사를 통해 저염멸치 유통을 늘릴 계획이다. 조 대표는 “어린이집 식단, 병원 환자식 등 저염멸치가 필요한 곳에 더 많이 제품을 공급하고 싶다”고 말했다.
스낵 형태의 제품도 개발하고 있다. 조 대표는 “비행기에서 주는 땅콩을 ‘땅콩을 곁들인 멸치 스낵’으로 바꾸고 싶다”며 “이를 위해 일본 스낵회사의 기술을 이전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블루베리를 곁들인 스낵, 소화 흡수율이 높은 강황을 넣은 스낵 등을 개발하고 있다. 조 대표는 “시제품을 테스트해보면 멸치가 와인 안주로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 수출도 확대할 계획이다. 조 대표는 2014년 미국 보스턴 식품 박람회에 참석한 뒤 미국 시장도 뚫었다. 미국 월마트와 중국계 슈퍼마켓 등에서 멸치 제품을 팔고있다. 홍콩에도 4~5차례 수출에 성공했다. 연간 수출액은 약 50만달러(약 5억3300만원) 수준이다.

“멸치는 우유보다 칼슘 함량이 높습니다. 저염멸치는 나트륨을 줄여서 칼슘 흡수가 더 잘되는 제품이에요. 성장기 어린이들이나, 뼈가 약해지는 어르신들이 멸치를 더 많이 먹을 수 있도록 ‘건강한 멸치’ 개발에 온 힘을 쏟겠습니다.”

사천=FARM 강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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