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담합 전방위 확산
중개업소 압박해 정상매물 삭제
1600가구 대단지에 매물 0건
주민들 "허위매물 근절" 주장

용산 중개업소, 검찰에 주민 고소
국토부 "법 위반 여부 검토"
한 인터넷 포털에 등록된 경기 하남 ‘위례 롯데캐슬’ 아파트 매물 153건은 2주 새 모두 사라졌다. 입주민들이 모든 매물을 ‘허위 매물’로 신고해서다. 이 단지 주민들은 네이버 카페에 입주민 커뮤니티를 개설해 “전용면적 84㎡는 11억5000만원 이하로 팔지 말자”고 공지한 뒤 매물을 모두 삭제했다. 지난주 9억원에 거래된 가격보다 무려 2억5000만원 높은 수준이다. 중개업소를 ‘(거래하기) 좋은 부동산’ ‘나쁜 부동산’으로 구분해 나쁜 부동산엔 전화를 걸어 욕하는 입주민도 있다고 주변 중개업소들은 전했다.

단지 내 엘리베이터와 가구별 우편함에도 같은 내용의 유인물이 붙어 있다. 사정이 급한 한 매도인은 어쩔 수 없이 해당 주택형을 9억5000만원에 팔기 위해 단지에서 먼 중개업소까지 찾아가 매물로 등록했다.

인근 H공인 관계자는 “한 집주인은 집을 팔아 2월 만기인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내줄 예정이었는데, 거래가 막혀 난감해하고 있다”며 “매수 희망자가 추격 매수할 생각이 없는데 호가만 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단지부터 시작된 시세 조작 행태는 ‘엠코 플로리체’ 등 인근 아파트 단지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

포털에서 매물이 모두 사라진 ‘위례 롯데캐슬’ 아파트. /네이버 캡처

◆집값 담합 급속 확산

서울 성동구 ‘왕십리 센트라스’ 입주민들은 네이버 입주민 카페에 중개업소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올렸다. 실거래가보다 싸게 내놓은 중개업소 명단을 공유하고 문자나 전화로 협박하기 위해서다. 입주 증명서류를 첨부해야 가입할 수 있는 해당 카페의 회원은 아파트 전체 가구(2529가구)의 절반인 1288명(7일 기준)이다. 입주민들은 이 행태를 “가격 담합이 아니라 허위 매물 근절운동”이라고 부르고 있다. 인근 L공인 대표는 “거래되기 힘든 가격에 매물을 올리는 입주민들의 조작된 시세가 바로 허위 매물”이라고 꼬집었다.

중개업소에 나온 전용 84㎡는 1148가구 중 세 개에 불과하다. 중층 매물이 11억3000만~12억5000만원이다. 지난달 실거래가 10억원(15층)보다 최고 2억5000만원 높다. 인근 H공인 관계자는 “한 중개업소가 악덕 부동산으로 찍혀서 전화로 욕설까지 들었다”며 “먹고 살기 위해선 집주인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강동구 ‘고덕 래미안 힐스테이트’ 일부 입주민은 하루 단위로 매물의 호가를 올리고 있다. 한 전용 84㎡ 소유자는 지난달 20일 하루에 1000만원씩 세 차례 호가를 올려 12억원에 매물로 등록했다. 지난달 8억9500만원에 실거래된 주택형이다. 이 단지 주민들도 네이버 카페를 개설해 “시세보다 싸게 제시하는 중개업소는 이용하지 말자”는 식으로 가격 통제에 나서고 있다. 고덕동 S공인 관계자는 “주민들이 중개업소에 찾아와 ‘이런 헐값에 아파트를 팔려고 하느냐’며 난리를 친다”며 “비이성적 과열 양상”이라고 한숨 지었다.
최근 가격이 급격히 오르고 있는 서초구 일대 소규모 아파트 단지에도 담합이 등장했다. 잠원동 H아파트 주민들은 매물이 나올 때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호가 정보를 공유한다. 인근 B공인 관계자는 “작은 아파트는 입주민 수가 적어 결속력이 엄청나다”며 “실거래가보다 낮은 매물이 나올 수 없도록 유도한다”고 말했다. 리모델링 호재와 담합 현상이 겹친 탓에 이 아파트 호가는 지난달 3주간 1억원 이상 올랐다.

소송전 양상도 보이고 있다. 용산구 동부이촌동 49개 중개업소는 지난 5일 동네 주민을 서울서부지검에 고소했다. 동부이촌동 아파트 가격이 저평가돼 있으니 호가를 최대한 올리라는 주민들의 압력에 지쳐서다. 같은 단지라도 동·층이 다르면 가격이 달라지지만 주민들은 이에 대해서도 항의하고 있다. T공인 관계자는 “입주민들이 중개업소에 ‘14억~15억원이 아파트 적정매매가’라는 지침을 주는 게 말이 되느냐”고 꼬집었다.

◆국토부, 법률 위반 여부 조사 착수

집값 담합 현상은 위례, 판교, 분당, 광교 등 수도권 인기 신도시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동판교) ‘봇들마을 1·2·4단지’에선 전용 82㎡를 9억5000만원 밑으로 거래하지 말자는 담합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주 같은 주택형이 5㎞ 떨어진 정자동 부동산에서 9억3000만원에 거래되자 주민들이 그곳까지 찾아가 “당신 관할 구역이 아닌데 왜 함부로 거래해서 집값을 떨어뜨리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각 관할 구청에도 담합 신고 문의가 늘었다. 성동구청 토지관리과 관계자는 “1~2월에 부동산 담합 관련 신고가 열댓 건 들어왔다”며 “담합 행위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공정거래법상 담합 행위 주체는 사업체인데, 현재 담합 행위는 아파트 입주민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어서다.

일부 지자체는 담합 행위 근절에 들어갔다. 경기 수원시청은 아파트 가격 상한선을 자체적으로 정하는 광교신도시 중개업소를 조사하기로 했다. 국토부는 공인중개사법 등 관련 법률 위반 여부 검토에 나섰다. 최근 단속에 들어간 자전거래(허위 거래 신고 후 계약 파기)가 매수·매도인 간 담합을 기반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연관성도 살펴볼 방침이다.

김형규/양길성/민경진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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