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가격이 내재가치보다 높아
'버블'이 있다 해도 주식·부동산 거래 금지 못해

가상화폐도 거래 자체 규제보다 투자자보호 주력해야
우리 사회 성찰의 계기 되길"

안동현 < 자본시장연구원장 >

지금 우리는 가상화폐와 부동산 투기란 두 가지 극단적 투기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그러나 두 개의 투기를 한 묶음으로 엮어 마냥 비난하기에는 그 속성이나 배경에 큰 차이가 있다.

먼저 투기의 정의를 논해 보자. 일반적으로 투자와 투기, 그리고 도박을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학문적으로는 이를 엄밀히 구분하기 쉽지 않다. 경제학에서는 경제 주체들이 위험회피적이라고 가정한다. 3자가 보기에 (즉, 객관적 확률분포하에서) 위험 대비 적정 수익률을 추구할 경우 투자라고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투기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제로섬 게임으로 기대수익률이 제로인 도박은 자연스럽게 투자에서 제외된다. 그렇다면 역시 제로섬 게임으로 기대수익률이 제로인 선물(先物)과 같은 파생상품 역시 도박인가?

흔히 투기는 정보를 취득하거나 분석에 기초해 투자 행위를 하는 데 반해 도박은 단순히 운에 맡기는 행위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블랙잭과 같은 일부 도박의 경우 수리에 밝은 사람은 카드카운팅을 이용해 승률을 올릴 수 있다. 그럴 경우 이런 겜블러는 투기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도박을 하는 것인가?

애초 투자와 투기의 경계 역시 모호하다. 경제 주체들이 위험회피적이라는 근거는 기대효용가설이다. 그런데 이 이론은 사람들이 위험회피적이라는 공리(公理), 즉 가정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위험중립적이라고 해서 비합리적이라고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실제 이스라엘 경제학자 대니얼 카네만은 기대효용이론의 문제를 지적한 ‘프로스펙트 이론’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종합하면 투자와 투기, 도박은 경제학적으로 명확히 구분하기 힘들다. 도박은 제로섬이란 명확한 수익구조와 ‘상규’에 기대 법으로 금지할 뿐이다.

다음으로 투기란 나쁜 것인가? 경제학적으로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에 기초해 선악을 규정할 순 없다. 따라서 역으로 투기를 문제 삼는 이유에서 투기의 현실적 정의를 찾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투기란 버블이란 배경이 전제돼 보인다. 즉, 시장 가격이 내재 가치보다 높은 버블 형성에 일조하거나 버블인지 알면서도 투자하는 행위를 투기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투기에 대한 규제는 버블에 대한 규제로 귀결된다. 이와 관련해 크게 두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다. 첫째,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경우다. 그런데 가격의 비적정성은 판단하기 쉽지 않다. 특히 가상화폐와 같이 그 성격이 규정되지 않은 대상에 투자할 경우 더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거래 금지와 같은 극약 처방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최근 일부 제약회사 주가가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렇다고 가격에 거품이 있으니 거래를 금지하자고는 않는다. 가상화폐는 그 내재 가치가 얼마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제로라고 확언할 수도 없다. 따라서 가상화폐는 그 성격의 규정에 따른 법적 문제에 매달리기보다는 제도권으로 유입해 불공정거래와 같은 투자자 보호에 역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둘째는 공리적 차원의 접근이다. 가상화폐는 참여자가 제한돼 가격이 비효율적이라도 그건 참여자들 문제로 국한된다. 반면 아파트와 같은 부동산 버블은 그 문제가 단순히 투기자들 문제로만 귀속되지 않는다.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 영향을 받는다. 일종의 외부 효과다. 따라서 버블 여부에 대한 판단보다는 공익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있으며 보다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두 투기의 배경 역시 차이가 있다. 부동산 투기는 기성세대, 특히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는 일부 부유층의 투기로 자본력이 뒷받침된 투기다. 반면 가상화폐 투기는 자본이 취약한 젊은 세대와 서민층에 꿈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 나였으면 좋겠지만 내가 아니라도 우리 중 누군가 정상적으로는 올라갈 수 없는 지붕 위로 올라가는 꿈을…. 부동산 투기가 앞선 자들의 투기며 탐욕의 투기라면 가상화폐 투기는 뒤처진 자들의 투기며 슬픈 투기다. 부동산 투기가 극에 달하면서 가상화폐 투기 역시 기승을 부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양극화의 민낯이 두 투기에서 극명하게 나타난 것이다. 단순히 투기란 이름 아래 비난에만 그칠 게 아니라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성찰할 기회로 삼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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